칼럼
김치항아리 속 젓가락 하나가 모두의 자유를 줄인다
공용 김치항아리에 먹던 젓가락을 넣는 작은 무책임은 옆 사람의 자유를 줄인다. 시민화는 함께 쓰는 공간의 책임을 익히고 국가의 과도한 개입도 따져 묻는 과정이다. 식탁과 카페, 경기장의 자유는 그 힘 위에 서 있다.
한 사람의 젓가락, 여러 사람의 불편
국밥집 식탁에 작은 김치항아리가 놓여 있다. 손님은 비치된 집게로 먹을 만큼 덜어 담는다. 더 먹고 싶으면 조금 더 꺼내면 된다. 종업원을 부를 필요도 없고, 처음부터 많이 받아 남길 일도 줄어든다. 사장에게도 손님에게도 편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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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누군가가 집게를 두고 자기가 먹던 젓가락을 항아리 안에 넣는다. 김치를 이리저리 뒤적인 뒤 마음에 드는 조각을 꺼낸다. 그 모습을 본 옆 사람은 더 이상 마음 편히 김치를 덜어 먹기 어렵다. 한 사람은 잠깐 편했을지 몰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편하게 먹을 자유를 잃었다.
식약처는 7월 31일 [「식품의 기준 및 규격」](https://www.mfds.go.kr/brd/m_207/view.do?seq=15182)을 개정했고, 음식점과 집단급식소의 위생·안전관리 기준은 10월 1일부터 시행됐다. 손님이 직접 덜어 먹는 소스류 등을 위생적으로 소분해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소스와 양념을 오염으로부터 지키자는 취지다.
이런 기준을 보면서 정부의 규제만 탓하고 끝낼 수는 없다. 식당 주인은 깨끗한 용기와 덜어 먹는 도구를 마련해야 하고, 손님은 그것을 제대로 사용해야 한다. 사용하던 젓가락을 공용 음식에 넣는 행동이 반복되면, 서로를 믿고 편하게 이용하던 방식은 유지되기 어려워진다.
신뢰가 줄여주는 검사와 감시
야구장에서도 같은 일을 생각해볼 수 있다. 표를 보여주고 들어가 친구들과 경기를 즐기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관중의 난동과 흉기 위협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고 가정해보자. 입구의 검사는 더 엄격해질 것이다. 공항처럼 검색대를 통과하고 가방을 열어 보이는 수고까지 늘어날 수 있다. 위협을 만들지 않은 사람도 그 비용을 함께 치른다.
카페 탁자에 휴대전화와 지갑을 놓고 잠시 자리를 비우는 생활도 떠올려보자.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 그런 모습에 놀란다면, 그가 부러워하는 것은 물건을 아무 데나 놓는 습관보다 남이 가져가지 않으리라는 믿음일 것이다. 법과 치안이 그 믿음을 뒷받침하지만,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 수많은 사람의 일상도 그 안에 들어 있다.
서로를 믿을 수 있을수록 확인하고 검사하고 감시하는 수고는 줄어든다. 내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건드리지 않고, 다른 사람도 내 자유를 존중하리라는 믿음이 쌓이면 우리 모두의 생활이 편해진다. 자유를 지키는 일은 국가에 무엇을 요구하는가와 함께, 내가 옆 사람에게 어떻게 행동하는가에도 달려 있다.
시민의 책임과 국가 권한을 함께 살핀다
씨앗이 시민화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민은 권리를 얻었다고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다. 자유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의 자유를 인정하며, 함께 쓰는 공간의 책임을 익히면서 자란다. 민주화로 얻은 자유를 생활 속에서 오래 지탱할 힘도 그렇게 생긴다.
시민화에는 국가의 권한을 살피는 힘도 들어 있다. 정부가 안전을 이유로 새로운 규칙을 만들 때, 정말 필요한지 살피고 더 나은 방법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집게를 제대로 쓰는 시민과 과도한 고시에 이의를 제기하는 시민은 같은 사람이다. 스스로 생활의 질서를 지키면서 국가의 개입 범위도 따져 묻는 것이다.
일부의 무책임이 있다고 해서 국가에 생활 전부를 통제할 권한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위험을 막는 데 필요한 기준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제한을 더하면, 성실하게 규칙을 지킨 사람까지 선택권을 잃는다. 시민의 책임을 키우는 일과 국가의 권한을 제한하는 일은 함께 가야 한다.
법과 고시가 늘어난다는 이유만으로 자유가 줄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어떤 기준은 오염과 폭력으로부터 우리의 자유를 지켜준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해결하던 생활의 일들이 자꾸 일률적인 금지와 검사로 바뀐다면, 자유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징후로 읽어야 한다.
생활의 자유를 지키는 작은씨앗
그래서 씨앗의 소리가 필요하다. 시민의 작은 무책임이 옆 사람에게 남기는 비용을 드러내고, 그 문제를 해결한다는 규제가 어디까지 들어오는지 살피는 시민저널이 필요하다. 정치인의 말만 좇는 동안에도 우리의 자유는 식탁과 카페, 경기장 입구에서 조금씩 달라진다.
김치를 덜 때 집게를 쓰는 일은 작다. 그러나 그 작은 책임 덕분에 여러 사람이 큰 불편 없이 식탁을 함께 쓸 수 있다. 시민화를 소홀히하면 이런 생활의 자율부터 약해진다. 그 빈자리를 규제와 감시가 채운 뒤에야 자유를 되찾겠다고 나서면, 우리는 훨씬 많은 비용을 치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