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선진화를 위해서는 시민화가 우선이다

2000년대 중반 선진화론은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의 국가 목표를 제시했다. 정치적 영향력은 얻었지만 시민의 일상적 실천으로 뿌리내리지는 못했다. 선진화가 우리가 도달하려는 사회의 모습이라면, 시민화는 그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이다.

민주화 다음을 고민하던 시대

과거 우리 사회에서 ‘선진화’라는 말이 크게 주목받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지나온 한국 사회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놓고 새로운 국가 비전과 시대정신을 찾던 200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진보 진영에서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이야기했고, 보수 진영에서는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의 국가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는 고민이 커졌습니다.

이때 개혁적 보수 지식인 박세일 교수가 선진화론을 본격적으로 제시했습니다.

박 교수는 2006년 펴낸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에서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에 이어 선진화가 한국 사회의 새로운 국가 목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선진화는 경제성장만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교육과 문화, 시장, 정치와 행정, 시민사회, 국제관계까지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종합적인 국가발전 구상이었습니다.

그가 제시한 다섯 가지 전략에도 ‘시민사회의 선진화’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선진화론의 철학으로 제시한 공동체자유주의도 개인의 자유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배려와 자율적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선진화와 통일의 관계

박세일 교수는 통일도 국가의 중대한 미래 과제로 보았습니다.

2006년의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은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의 국가 목표로 선진화를 제시한 책입니다. 이후 《창조적 세계화론》을 거쳐 2013년 《선진 통일 전략》에 이르면서 선진화와 통일을 하나의 국가 비전으로 결합했습니다.

박 교수에게 선진화와 통일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수단이라기보다 함께 추진해야 할 두 과제에 가까웠습니다. 대한민국의 선진화가 통일을 준비하는 힘이 되고, 통일은 다시 대한민국이 더 큰 국가로 도약하는 계기가 된다는 구상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선진통일’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취 위에서 선진화와 통일을 함께 새로운 국가 목표로 세우려는 구상을 제시했습니다.

정치적으로 성공했지만 사회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선진화론은 학자들의 세미나실에만 머물지는 않았습니다.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핵심 담론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선진일류국가’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공동체자유주의는 정당의 강령에 반영될 정도로 보수 진영의 중요한 철학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박세일 교수는 당시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이론가였지만 자신이 만든 연구기관이 보수만의 싱크탱크로 규정되는 것에는 거리를 두었습니다. 지적 정직성과 진보·보수를 아우르는 정책 연구를 강조했습니다.

선진화론은 정치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영향력과 사회적 확산은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진화는 국가 비전과 정부 정책의 언어로 사용됐지만, 시민 한 사람이 자신의 생활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정치권은 선진화를 국가경쟁력과 경제성장, 정부 개혁의 구호로 받아들였지만 시민이 공공문제를 발견하고 판단하며 해결하는 과정으로 발전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선진화론은 정부와 정당, 학계와 전문가 집단의 언어로는 살아남았지만 시민의 일상적 언어와 실천으로 충분히 확장되지 못했습니다.

사회학자 김호기는 선진화론이 민주화 이후 보수의 새로운 시대정신과 정책적 좌표를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동시에 2007년 대선과 정부의 국정 구호로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실제 사회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실패한 것 아니냐는 문제도 제기했습니다. 이후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 담론이 부상하면서 선진화론은 점차 중심 의제에서 밀려났습니다.

선진화론에 내용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시민사회를 빼놓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선진화를 말하는 것과 시민 한 사람을 공익의 주체로 세우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씨앗은 선진화 담론이 멈춘 자리를 여기에서 찾습니다.

선진화는 말했지만 시민화까지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 선진화는 말했지만
  • 시민화까지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선진화는 무엇을 바꾸려는가

선진화는 법치와 행정, 정치와 교육, 시장과 문화, 사회적 신뢰를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려는 구상입니다.

이 방향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경제 규모만 커지고 법치가 흔들리는 사회를 선진사회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기술이 발전해도 정치가 진영 대결에 갇혀 있고, 정부가 시민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제한한다면 선진국의 외형만 갖춘 나라에 머물게 됩니다.

선진화론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책임, 국가와 시장의 발전, 시민사회의 성숙을 함께 보려 했습니다. 이 문제의식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러나 선진화를 국가전략과 제도개혁의 차원에서만 추진하면 다시 국가가 중심에 놓입니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만들고, 제도를 어떻게 개선하며, 기업과 시민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가 중심이 됩니다.

시민은 교육받아야 할 사람, 정책에 협조해야 할 사람, 정부가 만든 제도의 혜택을 받는 사람으로 남기 쉽습니다.

국가가 시민을 선진화시키는 방식입니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선진화는 국가가 설계하고 전문가가 설명하며 시민이 따라가는 사업이 됩니다.

시민화는 무엇이 다른가

시민화는 시민에게 질서와 예절을 가르치는 일이 아닙니다. 정부가 시민의식을 교육하고 시민단체가 시민을 계몽하는 것도 시민화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시민화는 시민 한 사람이 공익의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국가가 발표한 통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교 기준을 확인하는 사람, 공익사업의 좋은 취지만 듣지 않고 예산과 결과를 살펴보는 사람, 자신이 지지하는 정권의 권력 남용에도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이 시민입니다.

기업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에는 문제를 제기하고, 시민단체의 선한 명분을 인정하면서도 그 단체의 예산과 인사, 성과를 검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로부터 도망가지 않지만 정치에 흡수되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민주화가 권력을 선택하고 교체하는 제도를 만들었다면, 시민화는 그 권력을 일상에서 계속 감시하는 시민을 만드는 일입니다. 민주화가 시민에게 투표권을 돌려주었다면, 시민화는 시민에게 공익을 판단하고 만들어가는 힘을 돌려주는 일입니다.

선진시민사회와 시민화는 다르다

선진화 담론도 시민사회의 발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선진화’와 ‘시민화’는 출발점이 다릅니다.

시민사회의 선진화가 시민단체와 공익기관, 제도와 참여 구조를 발전시키는 일이라면, 시민화는 그보다 앞서 시민 한 사람 안에서 시작됩니다.

시민단체의 수가 늘어난다고 시민이 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 위원회에 시민사회 인사가 많이 들어간다고 시민의 권한이 커지는 것도 아닙니다. 시민을 대신한다는 조직이 커지는 동안 정작 시민은 조직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습니다.

시민화는 조직의 성장이 아니라 시민의 성장입니다.

전문 시민단체가 시민을 대신해 발언하는 구조에서 시민이 직접 말하고 판단하는 구조로 가는 일입니다. 국가가 만든 공익사업에 참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시민이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방법을 제안하며 그 결과까지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시민사회를 선진화하기 전에 시민을 시민답게 세워야 합니다.

  • 시민화는 조직의 성장이 아니라
  • 시민의 성장입니다.

참여의 숫자가 시민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정부는 각종 위원회와 공청회, 시민참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도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합니다. 참여의 형식만 보면 우리 사회는 이미 충분히 시민화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의제를 정하고 참여자를 선정하며 논의의 범위까지 결정한다면 시민은 정부가 만든 무대에 초대된 손님일 뿐입니다. 시민 몇 사람을 회의에 앉혀놓고 이미 결정된 정책을 설명하는 것은 참여가 아니라 동원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OECD가 2023년 한국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나 같은 사람이 정부가 하는 일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 국민은 39%였습니다. 지역 현안에 의견을 낼 기회가 있다고 본 사람은 31%에 그쳤습니다. 국회에 대한 신뢰는 21%, 정당에 대한 신뢰는 20%였습니다. 제도는 민주화됐지만 많은 시민은 자신이 공공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시민의 참여가 늘어났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시민에게 실제 발언권과 선택권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시민의 의견이 기록됐는지, 정책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반대 의견을 낸 시민이 불이익 없이 계속 말할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시민 없는 시민참여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공익을 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공익은 주로 국가와 전문기관, 시민단체의 언어로 다뤄졌습니다. 국가는 법과 제도를 만들었고 전문가들은 정책을 설계했습니다. 시민단체는 시민을 대신해 공익을 주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제도가 발전했습니다. 동시에 시민은 공익을 판단하고 만드는 자리에서 조금씩 밀려났습니다. 국가는 공익을 관리했고 시민단체는 공익을 대표했지만, 정작 시민은 공익사업의 대상이나 후원자로 남았습니다.

국가가 공익을 제도화했다면, 이제는 공익을 시민화해야 합니다.

공익의 시민화는 국가가 하던 일을 시민에게 떠넘기자는 말이 아닙니다. 국가는 시민의 자유와 안전을 보호하고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책임 있게 제공해야 합니다. 다만 국가가 공익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시민단체도 시민의 목소리를 대신할 수는 있지만 독점할 수는 없습니다. 시민의 이름으로 예산과 정책 접근권을 얻었다면 시민에게 활동과 성과를 설명해야 합니다.

공익은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며 시민단체의 전유물도 아닙니다. 공익은 시민의 것입니다.

큰 국가보다 큰 시민

시민이 약한 사회에서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국가가 더 많은 권한을 가져갑니다. 정부는 시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규제를 늘리고, 공익기관은 시민을 대신한다는 이유로 조직을 키웁니다. 정치권은 시민의 불안과 분노를 진영의 자산으로 바꿉니다.

국가와 조직은 커지지만 시민의 선택과 책임은 줄어듭니다.

시민화는 이 방향을 뒤집는 일입니다. 시민이 정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권력에 설명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발견한 문제를 다른 시민과 함께 해결해보고, 그 과정과 결과를 기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패한 시민의 실험도 다음 시민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산으로 남아야 합니다.

국가는 이러한 시민의 활동을 지배하거나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해야 합니다. 시장은 시민의 선택을 존중하고 새로운 도전을 가로막지 않아야 합니다. 시민사회는 국가와 시장을 감시하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생긴 권력도 시민의 검증 앞에 내놓아야 합니다.

국가는 유능해야 하지만 제한되어야 합니다. 시장은 자유로워야 하지만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시민사회는 강해야 하지만 시민을 대신해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균형을 만드는 힘이 시민입니다.

선진화는 결과이고 시민화는 시작이다

선진화론은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의미 있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국가의 발전을 경제성장에만 가두지 않고 법치와 교육, 문화와 시민사회, 국제관계까지 넓혀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 성과는 인정해야 합니다.

이제 그 담론을 시민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넘어 시민이 어떻게 공익의 주체로 성장할 것인가를 말해야 합니다. 제도의 선진화에 앞서 시민의 힘을 키우고, 시민사회의 선진화에 앞서 시민 한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선진국을 먼저 만들고 시민을 나중에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시민이 성장해야 선진사회도 만들어집니다.

산업화가 경제의 기반을 만들고 민주화가 권력을 선택할 권리를 넓혔다면, 시민화는 시민을 공익의 주체로 세우는 일입니다.

선진화가 우리가 도달하려는 사회의 모습이라면 시민화는 그곳으로 가는 길입니다.

선진화를 위해서는 시민화가 우선입니다.

  • 선진화가 우리가 도달하려는 사회의 모습이라면
  • 시민화는 그곳으로 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