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칼럼

10년 지킨 기업은 문밖에, 50년 기업엔 1000억…누구의 가업을 지키나

10년을 지켜낸 기업이 있다.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고, 거래처와의 약속을 지키며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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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지켜낸 기업이 있다.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고, 거래처와의 약속을 지키며 버텼다. 그렇게 버텨내다가 창업자가 나이 들어 자녀에게 경영을 넘기려는 순간, 국가가 말한다. 앞으로는 20년을 더 채워 30년을 경영해야 원칙적으로 '가업'으로 인정하겠다고.

정부의 가업상속공제 개편안을 두고 중소기업들이 걱정하는 이유다. 정부안은 공제를 받기 위한 경영기간을 10년에서 원칙적으로 30년으로 늘린다. 다만 20년 이상 경영했다면 30년에 부족한 기간만큼 상속 후 사후관리 기간을 더 늘려 공제받을 길을 열어 놓았다.

문턱은 지금보다 높아진다. 현재는 다른 요건도 충족한 회사를 10년 이상 경영하면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지만, 정부안이 시행되면 20년 미만 경영 기업은 경영기간 요건을 채우지 못한다. 지금 공제 대상이 될 수 있는 10년 이상 20년 미만 기업의 승계 길이 막히는 셈이다.

20년 이상 된 기업도 조건이 까다로워진다. 단순히 오래된 기업이라고 모두 공제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문 기술이나 경영 노하우를 가진 ‘가업’인지 별도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또 상속받은 뒤 지분과 사업 등을 유지해야 하는 사후관리 기간도 현재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난다.

대신 오랫동안 회사를 운영한 기업에는 혜택을 늘린다. 공제 한도를 경영기간 1년당 20억원으로 계산해 최대 1,000억원까지 받을 수 있도록 했다. 50년을 경영해야 가능한 숫자다.

결국 이번 개편안은 오래된 기업의 공제 한도는 늘리는 대신, 공제를 받을 수 있는 기업의 조건과 상속 이후 지켜야 할 의무는 더 엄격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가업상속공제는 창업자 일가의 부를 무조건 지켜 주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상속세를 내려 회사를 급히 팔거나 사업 자산을 처분하면 직원의 일자리와 오랜 거래 관계도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사업을 계속하고 고용을 유지한다는 조건 아래 세 부담을 덜어 주는 제도다. 국세청은 현행 제도를, 10년 이상 경영한 중소기업 등의 정상적인 승계를 지원하는 제도로 설명한다. 그런데 정부안은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경영기간을 원칙적으로 30년으로 늘리고, 상속 후 사후관리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한다.

'편법'은 분명히 막아야 한다. 대형 베이커리 카페를 세워 땅을 가업 자산으로 물려주는 일이 진짜 문제라면, 사업과 무관한 토지를 공제에서 빼고 실제 영업 여부를 엄격히 확인하면 된다. 정부안에도 토지 공제 범위를 줄이는 내용이 들어 있다. 편법 한 가지가 발견됐다고 정상적으로 일해 온 기업에 원칙적으로 20년의 추가 경영기간을 요구하는 것은 정교한 처방이라 보기 어렵다.

기업은 같은 물건만 만들며 살아남지 않는다. 낡은 생산 방식을 바꾸고 새 업종에 도전해야 직원들의 다음 일자리도 생긴다. 그런데 정부안은 ‘전문 기술과 경영상 노하우’를 새 가업의 기준으로 내세우고, 심사위원회가 가업 인정과 업종 변경을 판단하도록 한다. 공제를 잃을까 봐 사업 전환을 미루게 만드는 제도라면, 국가는 '기업의 생존을 돕는 손'이 아니라 '변화의 허가권'을 쥐게 된다.

더구나 이 개편으로 공제 대상이 얼마나 줄어들지도 정부는 추정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숫자를 모른 채 경영기간의 원칙적 문턱부터 세 배로 높이는 세제 개편을 기업이 어떻게 믿고 승계를 준비하겠는가. 2025년 가업상속공제 결정 257건 가운데 10년 이상 20년 미만은 91건, 20년 이상 30년 미만은 82건이었다. 앞의 91건은 새 경영기간 요건에 못 미치고, 뒤의 82건은 사후관리 연장을 조건으로 공제받을 수 있는 구간이다. 과거 공제 결정 건수나 기업 전체의 업력 분포를 앞으로 탈락할 기업 수로 바꿔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승계의 문턱과 의무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보여 주는 숫자다. 매각과 폐업, 고용 감소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막연한 엄살로 취급할 일이 아니다.

정부가 답을 다시 내야 한다. 땅을 이용한 편법에는 더 날카로운 칼을 대고, 실제로 사업을 이어 온 기업에는 예측할 수 있는 승계의 길을 남겨야 한다. 30년 원칙과 20년 예외가 어떤 업종과 규모의 기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먼저 밝히고, 이미 승계를 준비한 기업의 경과조치와 업종 전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심사위원회의 재량에 맡길 부분도 줄여야 한다.

정부는 공제 한도를 최대 1000억 원으로 높였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문턱 앞에 선 기업에 더 큰 한도는 그림의 떡이다. 가업을 지키겠다는 정책이라면 오래된 간판만 골라 보호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직원과 함께 살아남으려 애쓰는 기업에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