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칼럼

세금을 올린 정치인, 시민은 그 이름을 기억한다

정치인의 증세 반대 서약은 선거에서 끝나지 않는다. ATR의 서약자 공개와 의회 표결 감시를 살펴보고, 한국에서 누가 어떤 세 부담을 늘렸는지 기록할 시민 입법감시의 방법을 제안한다.

정치인은 선거 때마다 세금을 함부로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국민의 부담을 줄이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면 새로운 사업에 예산이 필요하고 늘어난 지출을 감당하려면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선거 때의 약속은 어느새 정치적 수사로 남는다.

미국에는 이러한 정치인의 약속을 끝까지 추적하는 시민단체가 있다. 1985년 설립된 미국 조세개혁연대(Americans for Tax Reform·ATR)다. ATR은 정치인에게 증세 반대 서약을 요구하고, 실제 의정활동을 감시하며, 그 결과를 유권자에게 알린다.[1] 선거 때의 약속을 임기 중의 책임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 운동이 한국에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세금을 올린 정치인이 누구인지, 어떤 이유로 찬성했는지, 시민들은 제대로 알고 있는가.**

서약서에 서명한 정치인, 표결로 평가받는다

ATR의 대표적인 활동은 납세자 보호 서약(Taxpayer Protection Pledge)이다. 후보자와 현직 정치인에게 증세에 반대하겠다는 서면 약속을 요구한다. ATR은 서약자의 명단을 공개하고, 정치인이 그 약속을 지키는지 감시한다.[1]

이 서약은 법적 구속력을 갖는 계약이 아니다. 정치인이 서약을 어겼다고 법원에서 처벌받는 구조도 아니다. 대신 유권자에게 약속의 이행 여부를 알리고 정치적 책임을 묻는다.

ATR 홈페이지가 공개한 집계에는 연방 상원의원 44명, 하원의원 194명, 주지사 17명 등 총 255명이 표시되어 있다.[2] 이 수치는 ATR이 자체 공개한 해당 직위의 서약 현황이며, 미국 전체 정치인의 참여율이나 모든 지방선출직을 포함한 총계가 아니다.

정치인에게는 한 장의 서약서가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선거 당시 서명한 문서가 남아 있고 이후 증세 법안에 찬성한다면 그 이유를 유권자에게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약보다 주목할 것은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ATR은 반증세라는 분명한 정책적 입장에서 정치인의 행동을 평가한다. 유권자는 그 평가에 동의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의 약속과 행동을 비교할 정보가 시민에게 제공된다는 사실이다.

법안이 통과된 뒤에는 이미 늦다

세금은 어느 날 갑자기 올라가지 않는다. 정부가 세법 개정안을 제출하거나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고, 상임위원회와 본회의를 거쳐 제도가 바뀐다. 이 과정에서 세율뿐 아니라 공제와 감면, 과세 기준, 신고 의무까지 달라질 수 있다.

시민이 마지막에 받아보는 것은 세금고지서지만, 부담을 결정하는 곳은 국회다. 미국에서는 Congress.gov와 연방 상·하원의 공식 서비스를 통해 법안의 처리 단계와 기명표결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3][4] 모든 의결이 의원별 기명표결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기록이 없는 단계와 실제 표결 결과를 구분해야 한다.

한국이 배워야 할 것은 이런 공개 자료를 시민의 판단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어떤 법안이 세 부담을 높이는지, 누가 발의했고 누가 찬성했는지, 가계와 기업에 어떤 비용이 생기는지를 시민의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근로소득세율은 그대로 두면서 세액공제를 축소하면 어떻게 될까. 정부는 세율을 올리지 않았다고 설명할 수 있지만 일부 납세자의 실제 부담은 늘어난다. 기업에 새로운 신고 의무를 부과할 때도 납부세액과 별도로 인건비와 행정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세금감시는 세율 인상 여부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민이 실제로 얼마를 더 부담하는지, 왜 부담이 늘어나는지 추적해야 한다.**

세금은 국회에서 결정되지만 책임은 흐려진다

한국에서도 국회의원의 발의와 표결 기록은 공개된다. 국회 의안정보와 열린국회정보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5] 그러나 자료가 공개되어 있다는 것과 시민이 그 내용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세법 개정안은 어렵다. 조문이 복잡하고 부칙과 시행령까지 살펴야 실제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 정부의 세수 추계 역시 시민의 가계부나 자영업자의 장부와는 거리가 멀다.

더 큰 문제는 정치적 책임의 분산이다. 정부는 재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여당은 정책 성과를 설명하며, 야당은 반대하거나 수정안을 제시한다. 법안이 통과된 뒤 어느 의원이 어떤 부담 증가에 책임이 있는지 시민이 쉽게 추적하기 어렵다.

시민운동에도 빈자리가 있다. 복지 확대나 특정 사업의 예산 확보를 요구하는 활동은 활발하지만 그 재원을 누가 부담하는지 묻는 일은 상대적으로 주목받기 어렵다. 공익사업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세금 부담에 대한 질문이 밀리기도 한다.

새로운 지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재원과 부담의 정당성을 설명할 책임이 있다. 정부와 국회는 기존 지출을 얼마나 조정했는지, 다른 재원 조달 방법은 없는지, 증세로 얻을 공익이 시민의 부담을 정당화하는지 먼저 공개해야 한다. 이 질문을 조직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납세자운동의 출발점이다.

한국에도 납세자 입법감시가 필요하다

ATR의 방식을 한국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미국의 정당 구조와 조세제도, 시민운동 환경은 한국과 다르다. ATR은 명확한 반증세 노선을 가진 단체이며 모든 조세정책을 중립적으로 평가하는 기관은 아니다. 그럼에도 정치인의 조세정책을 기록하고 평가하며 공개하는 방법은 배울 만하다.

첫째, 증세 관련 법안을 상시 추적한다. 국회에 제출되는 법안을 수집해 세율 인상과 공제 축소, 부담금 신설, 신고 의무 증가를 구분한다. 실제 부담 증가가 확인되지 않은 법안은 별도로 표시한다.

둘째, 의원별 발의·표결 기록을 공개한다. 발의자와 찬반 의원, 기명표결이 있었다면 불참한 의원도 확인한다. 표결이 없거나 기록되지 않은 단계에서는 그런 한계를 명확히 밝히고, 의원의 입장과 이유를 함께 소개한다.

셋째, 시민과 기업의 부담을 계산한다. 법률 조문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근로자와 자영업자, 중소기업, 은퇴자 등의 실제 비용 변화를 사례별로 제시한다.

넷째, 선거 공약과 의정활동을 비교한다. 선거 때 약속한 조세정책이 임기 중 어떻게 이행됐는지 기록한다. 증세에 찬성했다면 그 이유와 대체 재원 검토 여부를 확인한다.

이러한 감시는 특정 정당에만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시민에게 부담을 늘리는 법안을 추진한다면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사실과 근거를 공개하는 일은 감시의 신뢰를 지키는 기본 조건이다.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구호가 아니다

한국에는 이미 국회의 법안정보, 정부의 세법 개정 자료, 국세통계, 지방재정 자료 등 감시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있다. 부족한 것은 흩어진 정보를 연결해 시민의 부담과 정치인의 책임을 보여주는 지속적인 체계다.

어느 의원이 증세 법안을 발의했는가. 그 법안은 누구의 세금을 얼마나 늘리는가. 국회 심사 과정에서 어떤 수정이 이루어졌는가. 정부가 약속한 효과는 실제로 나타났는가. 이 네 가지 질문에 꾸준히 답하는 것만으로도 감시의 수준은 달라진다.

인공지능을 활용한다면 신구조문 비교, 부담 변화 분석, 의원별 표결 기록 정리의 일부를 자동화할 수 있다. 자동화가 만든 결과는 사람이 원문과 대조해야 한다. 전문 정보의 문턱을 낮추되 잘못된 표결 기록이나 세수 추계를 퍼뜨리지 않기 위한 검증이 필요하다.

《씨앗의 소리》가 추진하는 한국형 세금감시운동도 이 방향을 지향한다. 새로운 세금과 부담금이 등장할 때마다 근거를 검토하고 시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며 국회와 정부의 책임을 추적한다.

정치인이 세금을 올릴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결정에 대한 설명과 책임까지 면제받을 수는 없다. **세금을 내는 시민에게는 그 세금이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알 권리가 있다. 세금을 결정한 정치인에게는 자신의 선택을 설명할 의무가 있다.**

미국 ATR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증세 반대 구호를 넘어 정치인의 약속을 문서로 남기고 의정활동을 기록하며 유권자가 책임을 판단할 수 있도록 만드는 조직력이다. 한국의 납세자운동도 이제 누가 세금을 올렸고 누구에게 부담을 지웠으며 어떤 근거로 결정했는지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시민이 기억하지 않는 세금은 정치인에게 쉬운 세금이 된다. 시민이 기록하고 감시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정치인은 납세자를 두려워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