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금 안 올리겠습니다’ 서약서 한 장이 정치인을 묶었다
세율을 그대로 두어도 공제를 줄이거나 오래된 기준을 묶어두면 시민의 세금은 늘어난다. ATR의 서약서가 살핀 증세의 길을 한국의 가족·가게·병원 사례로 펼쳐본다. 내 통장에서 더 빠져나갈 돈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지키는 일, KTR은 씨앗의 매일 세금 기사에서 시작한다.
세금 내는 시민이 정치를 바꾸다 ②
세율을 올리지 않았는데 세금은 늘어난다. 공제를 줄이고, 과세 대상을 넓히고, 오래된 기준을 그대로 두는 것만으로도 시민이 내야 할 돈은 많아질 수 있다.
정부는 정상화라고 설명하고, 특례를 정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시민의 통장에서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돈이 빠져나간다. 어려운 세법의 문장과 실제 살림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미국의 세금개혁단체 ATR은 정치인에게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문서로 받았다. 그 서약에는 세율 인상과 함께 공제 축소를 통한 부담 증가도 담겨 있었다. 시민이 모르는 사이 세금이 늘어날 수 있는 길까지 살피겠다는 뜻이었다.
한국형 세금감시운동 KTR도 이 대목에서 배울 것이 있다. 씨앗이 매일 소개하는 세금 정책을 하나씩 펼쳐놓고, 어느 조항이 누구의 부담을 얼마나 늘리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더 많은 세금이 내 통장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감시하고 지키는 일이다.
빈칸 몇 개, 약속 두 가지
ATR이 공개한 연방 공직자용 ‘납세자 보호 서약’은 한 장짜리 문서다. 이름과 지역을 적는 빈칸, 서명과 날짜, 두 명의 증인 서명란이 있다.[1](https://atr.org/wp-content/uploads/2014/02/2020PledgeFederal.pdf)
그 안에 적힌 약속은 두 가지다.
첫째, 개인과 기업의 소득에 적용하는 세율을 높이려는 시도에 반대한다.
둘째, 공제와 세액공제를 줄이거나 없애 세금을 더 걷으려 한다면, 그만큼의 세율 인하로 상쇄하지 않는 한 반대한다.
두 번째 약속에는 시민이 놓치기 쉬운 세금의 길이 숨어 있다. 지금까지 빼주던 금액을 줄이거나, 세금에서 깎아주던 혜택을 없애면 세율을 그대로 두고도 더 걷을 수 있다.
가상의 가게를 생각해보자. 종전에는 100만원의 세금에서 20만원을 깎아줘 실제로 80만원을 냈다. 그 혜택을 없애면 낼 돈은 100만원이 된다. 세율표는 그대로인데 가게 주인의 부담은 20만원 늘었다.
ATR은 이 길까지 서약서에 적어두었다. 세금 혜택을 정리해 더 걷는 돈은 세율을 낮추는 데 돌려 납세자의 전체 부담이 늘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1](https://atr.org/wp-content/uploads/2014/02/2020PledgeFederal.pdf)[2](https://atr.org/myths-facts-taxpayer-protection-pledge-a6979/)
이 서약은 전체 부담의 증가를 막는 데 초점을 둔다. 개편 과정에서 가정과 가게마다 부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하는 일도 필요하다. 전체 숫자가 같아도 누군가에게는 더 큰 고지서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 때의 말을 당선 뒤에도 기억한다
ATR은 1985년 그로버 노퀴스트가 설립했다. 단체 설명에 따르면 납세자 보호 서약은 레이건 대통령의 지지를 받아 1986년 본격적으로 도입됐다.[3](https://atr.org/about-the-pledge/)[4](https://atr.org/about/)
ATR은 서약의 상대가 지역 유권자와 미국 국민이라고 설명한다. 단체는 그 약속을 알리고 지키는지 살피는 역할을 맡는다.[3](https://atr.org/about-the-pledge/)
후보자에게 서약을 요청하고, 서명한 사람을 공개한다. 당선 뒤에는 세금과 관련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 확인한다. 약속과 행동이 어긋나면 그 근거를 시민에게 보여준다.
시민이 모든 세법 개정안과 의회 회의록을 읽기는 어렵다. 그 일을 꾸준히 맡는 조직이 있으면, 선거 때 들었던 말과 당선 뒤의 행동을 연결해볼 수 있다.
세금 약속이 얼마나 오래 따라붙는지는 조지 H. W. 부시의 사례에서도 보인다.
부시는 198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Read my lips: no new taxes’라고 말했다. 분명히 듣고 기억하라, 세금을 새로 올리지 않겠다는 강한 약속이었다.[5](https://www.presidency.ucsb.edu/documents/address-accepting-the-presidential-nomination-the-republican-national-convention-new)
1992년 대통령 후보 토론에서 빌 클린턴은 그 약속을 다시 꺼냈다.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한 뒤 실제로 올렸다고 공격했다. 부시는 증세에 동의했던 일을 인정하며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답했다.[6](https://www.presidency.ucsb.edu/documents/presidential-debate-east-lansing-michigan)
4년 전 선거장의 말이 현직 대통령이 답해야 할 질문으로 돌아왔다. 서약서의 힘도 이처럼 시민이 기억하고 지켜보는 데서 생긴다.
부모의 집을 물려받는데, 왜 큰돈이 필요한가
한국에서 세금이 늘어나는 길은 씨앗이 다룬 기사 안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세율은 그대로인데 납세자는 늘었다…상속세의 조용한 증세」](/monitoring/tax/commentary/inheritance-tax-automatic-increase-2026)는 집값이 오르는 동안 공제 기준이 멈춰 있는 문제를 다뤘다.
부모가 남긴 12억원짜리 집을 두 자녀가 물려받는다고 가정해보자. 배우자와 채무, 다른 재산이 없고 일괄공제 5억원을 적용하면, 장례비와 신고세액공제 등을 제외한 단순 산출세액은 1억5000만원이다. 실제 세액은 가족의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남은 재산은 집인데 필요한 돈은 현금이다. 세금을 마련하려면 집을 팔거나 돈을 빌려야 할 수 있다.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로 가족의 생활이 그만큼 넉넉해진 것은 아니다. 그 집에서 계속 살아가는 동안에도 생활비는 월급과 연금에서 나온다. 세금을 빼주는 기준이 오래 멈춰 있으면, 같은 생활 터전을 물려받는 일이 점점 더 큰 현금 부담으로 돌아온다.
씨앗은 공제 기준을 오늘의 물가와 주거 현실에 맞게 조정하고, 이후에도 물가 변화에 따라 정기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한 번 올려놓고 다시 수십 년을 묶어두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
KTR이 살필 것은 이렇게 바뀌지 않은 숫자다. 새 세금이 생겼는지만 보면 오래된 기준 때문에 늘어나는 부담은 놓치게 된다. 어느 가족이 새로 세금을 내게 되는지, 공제를 조정하면 그 부담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설명하는 것도 세금감시다.
같은 매출인데, 가게의 세금은 늘어난다
씨앗의 [「카드매출 공제 축소를 정상화로만 설명할 수 없다」](/monitoring/tax/commentary/card-sales-credit-normalization-burden-2026)는 공제를 줄여 부담이 늘어나는 경우를 다뤘다.
정부는 한시 특례를 정상화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가게 주인에게는 같은 매출에서 내야 할 세금이 늘어나는 일이 될 수 있다.
카드매출 공제는 가게가 카드 등으로 받은 매출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일정 부분 깎아주는 제도다. 이 공제를 줄이면 세율을 올리지 않아도 실제 납부 부담은 늘 수 있다.
설명을 위해 공제액이 100만원 줄어드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공제를 전부 쓰던 가게라면 다른 조건이 같을 때 세금은 100만원 늘어난다. 1년 동안 남긴 이익이 1000만원인 가게라면 그 이익의 10%에 해당하는 돈이다.
가게의 매출에는 재료비와 인건비, 임차료로 나갈 돈도 들어 있다. 매출이 비슷한 두 가게라도 주인에게 남는 돈은 다를 수 있다. 매출액만 보고 부담을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살림의 사정을 놓친다.
씨앗은 이 차이를 짚었다. 영세 가게의 공제를 유지하고, 실제 이익이 적은 가게가 매출액만으로 지원에서 밀려나지 않게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고칠 수 있다.
KTR은 공제 축소 조항이 나올 때마다 어느 가게에 적용되는지, 종전보다 얼마나 더 내게 되는지 보여줄 수 있다. ‘정상화’라는 한 단어로 지나갈 정책을 가게 주인이 이해할 수 있는 계산으로 풀어주는 것이다.
공제에서 빠진 병원에는 어떤 일이 생기나
공제 대상을 줄이는 방식도 있다. 씨앗이 다룬 [분만병원의 가업상속공제 문제](/briefings/hospital-inheritance-tax-maternity-care/)가 그런 사례다.
기사에 소개된 병원 측 추산으로는 공제를 적용할 때 약 40억원이던 상속세가, 병원이 공제 대상에서 제외되면 330억원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확정된 세액은 아니다. 병원장은 그 돈을 마련하려면 건물을 팔아야 하고, 그러면 분만병원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건물의 값이 비싸다고 병원 금고에 그만큼의 현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금을 마련하려고 건물을 팔면 그곳의 진료와 일자리도 흔들릴 수 있다.
씨앗은 실제로 영업을 이어가는 사업과 상속을 위해 꾸민 위장 사업을 구별하자는 해법을 제시했다. 정상적으로 사업을 계속하는 동안에는 납부를 유예하고, 사업을 팔거나 폐업하거나 용도를 바꿀 때 정산·추징하는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 사업에 필요하지 않은 자산은 구분해서 과세한다.
KTR은 공제 대상에서 업종 하나를 빼는 문장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설명할 수 있다. 몇 줄의 개정 조항이 병원과 직원, 환자에게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여주고, 사업을 계속하면서 세금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내 통장에서 더 빠져나갈 돈을 조목조목 설명하자
‘증세는 안 된다’는 말에는 생활 속에서 늘어나는 세금을 놓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야 한다.
부모의 집을 물려받을 때, 가게의 카드매출을 신고할 때, 오래 운영한 병원을 이어갈 때 세금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다. 세율 인상은 눈에 잘 띈다. 공제 축소와 대상 제외, 오래된 기준의 동결은 어려운 설명 속에 묻히기 쉽다.
씨앗은 매일 새로운 세금 정책을 소개하고, 그 하나하나에 의견을 내고 있다. KTR은 이 일을 꾸준히 이어가며 시민의 부담을 지키는 방향으로 시민의 피와 땀이 들어 있는 세금을 지켜보려 한다.
공제를 줄이는 안이 나오면 누가 얼마를 더 내는지 설명한다. 공제 대상을 바꾸면 어떤 가족과 가게가 빠지는지 보여준다. 기준을 그대로 둬도 부담이 늘어난다면 그 과정을 계산한다. 씨앗이 제시한 대안으로 고쳤을 때 생활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함께 풀어준다.
상속세 공제를 조정하면 가족이 마련해야 할 현금이 줄어든다. 영세 가게의 카드매출 공제를 유지하면 가게에 남는 돈을 지킬 수 있다. 사업 지속을 조건으로 납부를 유예하면 세금 때문에 정상적인 사업을 팔아야 하는 압박을 줄일 수 있다.
시민은 자기 삶에 닿는 조항부터 읽으면 된다. 씨앗은 그 조항을 찾아 설명하고, 부담을 늘리는 개정에 문제를 제기하고,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정부안이 국회에서 어떻게 바뀌는지, 최종적으로 어떤 부담이 남는지도 이어서 알려준다.
더 이상의 세금이 내 통장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조목조목 살피고 지키는 것. 한국형 세금감시운동 KTR은 씨앗이 매일 쓰는 세금 기사에서 그 일을 시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