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집값은 올랐는데, 세금 낼 돈은 없었다
집값이 올라도 세금 낼 현금까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고지서 앞에서 시작한 시민들의 불안은 150만 개가 넘는 서명과 재산세 제한으로 이어졌다. 미국 납세자운동은 어떻게 생활의 걱정을 정치의 규칙으로 바꾸었을까.
세금 내는 시민이 정치를 바꾸다 ①
집값이 올랐다는 소식을 들으면 누구나 기뻐할 것 같다. 오래전 장만한 집이 두 배가 됐다면, 이제 좀 넉넉해진 셈 아닐까.
그 집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집값이 올라도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나 연금은 그대로다. 집을 팔지 않는 한, 늘어난 재산은 장부 위의 숫자다. 그 숫자를 따라 세금 고지서까지 두꺼워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 집의 값은 올랐는데, 그 집에서 살아갈 돈이 모자라진다.
19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많은 주민이 겪은 불안이었다. 물가와 부동산 가격이 뛰면서 집에 매기는 세금도 커졌다. 당시 캘리포니아 조세당국의 기록에도 집값 상승으로 늘어난 세수를 세율 인하가 충분히 상쇄하지 못했고, 주정부 금고에는 여유자금이 쌓이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커졌다고 적혀 있다.[1](https://boe.ca.gov/info/pub216/index.htm)
국가의 장부는 넉넉해지고, 시민의 지갑은 얇아지는 풍경이었다.
세금 때문에 집을 떠나야 하나
집에 붙는 재산세를 쉽게 생각해보자. 집의 평가액에 일정한 비율을 곱해 세금을 매긴다. 그 비율이 그대로여도 평가액이 오르면 낼 돈은 늘어난다. 집값 상승이 세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은퇴한 사람에게는 더 절박하다. 평생 일해 집 한 채를 마련했고, 이제 정해진 연금으로 생활한다. 주변 집들이 비싸게 거래됐다는 이유로 내 집의 세금도 올라간다. 시장에서 내 집을 높이 평가해주는 일과 내가 그 세금을 감당하는 일 사이에 틈이 벌어진다.
공영라디오의 후일 취재에는 당시의 불안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1978년 과세용 주택 평가액 통지서를 보낸 뒤, 주민들에게 전화를 받았다는 감정평가 담당자의 회고다. 주민들은 세금을 내고 나면 주택대출금을 갚기 어렵다고 호소했다.[2](https://projects.scpr.org/prop-13/history/)
부엌 식탁에서 고지서를 펼쳐놓고 계산기를 두드렸을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식비를 줄일까. 다른 지출을 미룰까. 내년에도 오르면 어떻게 할까.
이 불안에 이름을 붙이고 사람들을 모은 이들이 있었다. 하워드 자비스와 폴 갠이었다. 이들은 캘리포니아의 재산세를 제한하는 주민발의를 추진했다.[3](https://repository.uclawsf.edu/ca_ballot_props/850/)
주민발의는 시민이 직접 제도 변경안을 만들어 서명을 모으고, 일정한 요건을 채우면 투표에 부치는 방식이다. 의원들에게 부탁하고 답을 기다리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시민이 의제를 만들고 시민이 결정한다.
그 안의 이름이 ‘Proposition 13’, 우리말로 풀면 ‘주민발의안 13호’였다. 이름은 무미건조했다. 그 안에 담긴 요구는 생활과 가까웠다. 집을 가진 사람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세금에 한계를 정하자는 것이었다.
불만이 서명이 되고, 서명이 규칙이 됐다
자비스는 오랫동안 재산세를 바꾸기 위해 활동했다. 주민발의 운동은 시민들의 서명을 모았고, 라디오를 통해 호소를 이어갔다. 공영라디오의 회고 보도에 따르면 1977년 말까지 모인 서명은 150만 개를 넘었다.[2](https://projects.scpr.org/prop-13/history/)
한 사람의 고지서는 한 사람의 걱정으로 남기 쉽다. 같은 걱정을 가진 사람들이 서명하기 시작하자, 정부가 답해야 할 요구가 됐다.
1978년 6월 6일,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은 발의안을 통과시켰다. 찬성률은 64.8%. 투표한 사람 열 명 가운데 여섯 명 이상이 재산세에 제동을 걸었다.[3](https://repository.uclawsf.edu/ca_ballot_props/850/)
핵심은 두 가지였다. 부동산에 매기는 기본 재산세율을 과세 기준 가치의 1%로 제한하고, 같은 소유자가 계속 보유하는 동안 그 과세 기준 가치가 오르는 폭도 원칙적으로 연 2% 이내로 묶었다. 집을 팔아 소유자가 바뀌거나 새로 건축하는 경우에는 다시 평가하도록 했다. 승인된 채무 등에 따른 추가 부담은 별도로 남았다.[4](https://www.law.cornell.edu/supremecourt/text/505/1)
조금 쉽게 말하면 이렇다. 주변 집값이 뛰었다고 내년 세금까지 끝없이 따라 뛰지 않도록 울타리를 세운 것이다.
시민은 이제 다음 해의 부담을 어느 정도 내다볼 수 있게 됐다. 내 집에서 계속 살아갈 계획을 세우는 사람에게 이 예측 가능성은 큰 변화였다.
승리 직후 사진에는 자비스를 둘러싼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환호하는 얼굴과 들어 올린 손들이 보인다. 세금이 몇 퍼센트 내려갔다는 숫자 뒤에는, 이렇게 자기 삶에 관한 결정을 되찾았다고 느낀 사람들이 있었다.
한 번 이긴 뒤에도 지킬 사람이 필요했다
투표에서 이겼다고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새 법안이 나오고, 세금의 이름이 바뀌고, 다른 방식의 부담이 생긴다. 어렵게 얻은 규칙을 유지하려면 누군가는 의회를 살피고, 제도를 설명하고, 시민에게 변화를 알려야 한다.
자비스와 함께 운동한 사람들은 승리 뒤에도 상설 조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오늘날의 하워드 자비스 납세자협회는 자신들의 출발을 그렇게 설명한다. 재산세 제한을 지키고 납세자의 부담을 계속 감시할 조직을 만든 것이다.[5](https://www.hjta.org/about-hjta/the-history-of-hjta/)
이 대목에서 운동의 모습이 한 단계 바뀐다. 고지서가 나올 때마다 화를 내는 시민들이, 정부가 어떤 규칙을 만들고 바꾸는지 꾸준히 살피는 시민들로 이어진다.
재산세를 줄인 뒤에는 학교와 소방, 도서관을 운영할 재원도 다시 따져야 했다. 오래 보유한 집과 새로 산 집 사이에 세금 차이가 커지는 문제도 남았다. 시민의 부담과 정부가 쓰는 돈을 함께 살피는 일은 계속됐다.[2](https://projects.scpr.org/prop-13/history/)[4](https://www.law.cornell.edu/supremecourt/text/505/1)
세금감시운동이 오래갈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걷을 때의 부담, 쓸 때의 필요, 실제로 낸 결과를 시민이 계속 확인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불안이 워싱턴의 조직으로
미국 납세자운동은 이렇게 여러 지역과 조직에서 자라났다. 그 흐름 속에서 1985년, 워싱턴에 ‘Americans for Tax Reform’이 설립됐다. 줄여서 ATR. 세금개혁을 추진하는 미국인들의 단체라는 뜻이다. 설립자는 그로버 노퀴스트였고, ATR은 레이건 대통령의 요청으로 만들어졌다고 소개한다.[6](https://atr.org/about/)
캘리포니아 주민발의와 ATR은 서로 다른 조직과 사건이다. 1978년의 승리는 ATR이 생기기 일곱 해 전의 일이다. 먼저 시민들이 세금 규칙을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쌓았고, 뒤이어 연방 정치에서 감세와 증세 억제를 추진하는 조직이 등장한 흐름으로 이해하면 된다.
ATR이 내놓은 방법은 독특했다. 선거에 나오는 정치인에게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문서로 받았다. 이름을 공개하고, 당선된 뒤에도 그 약속을 지키는지 살폈다. 이를 ‘납세자 보호 서약’이라고 불렀다.[7](https://atr.org/about-the-pledge/)
시민에게는 기억해야 할 기준이 생겼다. 이 사람이 선거 때 어떤 말을 했는지, 의회에 들어가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연결해볼 수 있게 됐다.
1986년 미국의 큰 세제개편에서는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이 50%에서 28%로 내려갔다. ATR도 이 개편을 지지하며 활동했다. 법을 바꾼 힘에는 대통령과 의회, 여러 단체의 활동이 함께 있었다.[8](https://apps.irs.gov/app/understandingTaxes/teacher/whys_thm02_les06.jsp)[6](https://atr.org/about/)
미국에서는 세금이 시민운동의 중요한 의제가 됐다. 내가 얼마를 내야 하는지, 정부가 얼마나 걷을 수 있는지, 정치인이 한 약속을 지켰는지를 따지는 사람들이 조직을 만들고 정치를 움직였다.
빚으로 산 집, 현금으로 내는 세금
한국에서 집을 장만하는 풍경에는 은행이 늘 함께 등장한다. 모아둔 돈을 세어보고, 부모에게 손을 벌리고,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돈을 끝까지 계산한다. 지금의 소득으로는 버거운 집 앞에서도 사람들은 망설인다. 이번에 놓치면 다음에는 더 멀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 계산을 떠받치는 기대가 있다. 집값이 오르는 속도가 이자 부담보다 빠르면, 무리해서라도 사두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다. 몇 년 더 저축하는 동안 집값이 그보다 더 뛰면 성실하게 모은 돈으로도 내 집에 닿기 어려워진다. 집값이 오를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형편보다 큰 빚을 감수하게 된다.
거품이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막차라도 타려 한다. 너무 비싸서 불안하고, 더 비싸질까 봐 또 불안하다. 내 집 마련이 삶을 안정시키는 계획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다급한 추격으로 바뀐다.
그렇게 산 집에는 은행의 돈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집값이 올랐다는 소식을 듣는 날에도 대출금은 그대로 남아 있다. 올라간 가격은 집을 팔아야 손에 들어오고, 원금과 이자는 이번 달에도 갚아야 한다.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 집을 마련할 자금줄부터 좁아진다. 변동금리 대출의 이자가 오르면 이미 집을 산 가정의 생활비가 줄어든다. 금리와 대출 규제라는 정책의 숫자는 식비, 교육비, 병원비로 이어진다. 빚을 끌어다 마련한 집에서는 금융정책이 곧 살림의 문제가 된다.
여기에 세금 고지서가 도착한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는 집을 살 때 받은 대출금을 집의 과세 기준에서 빼주는 방식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종합부동산세에는 기본공제와 고령자·장기보유자 공제 등이 있어도, 주택담보대출 잔액을 차감하는 항목은 없다.[9](https://www.nts.go.kr/nts/cm/cntnts/cntntsView.do?cntntsId=7735)
겉으로는 값비싼 집의 주인이다. 매달의 살림은 은행에 원금과 이자를 보내고 남은 돈으로 꾸려간다. 집값만 보면 부유해진 사람인데, 통장을 보면 한 달을 빠듯하게 버티는 사람이다.
빚으로 떠받친 집에도 세금은 현금으로 찾아온다.
부모가 남긴 집을 물려받을 때도 현금의 문제가 이어진다. 상속세를 계산할 때는 확인된 부모의 채무를 공제한다. 공제 뒤에도 상속세가 발생하고 남은 재산이 주로 집에 묶여 있다면, 가족은 세금 낼 돈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자녀가 이미 갚고 있는 자신의 주택대출은 부모의 상속재산에서 빼주는 채무가 아니다.[10](https://i.nts.go.kr/nts/cm/cntnts/cntntsView.do?cntntsId=7956&mi=6528)
자기 집 대출을 갚는 통장에서 부모의 집에 붙은 세금까지 마련해야 하는 가족도 생길 수 있다. 이자가 생활비를 먼저 가져가고, 세금이 남은 현금 주머니를 다시 비운다. 중산층의 재산이라는 숫자 안에는 이렇게 서로 다른 가족의 형편이 숨어 있다.
1970년대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느꼈던 불안이 한국의 식탁에서도 되살아난다. 집값은 올랐는데, 그 집에서 살아갈 돈은 모자란다. 대출을 갚으며 버티는 가정에게는 이 말이 더욱 절박하다.
고지서와 대출 상환표를 함께 펼치자
미국 시민들은 그 부담을 함께 설명하고, 서명을 모으고, 규칙을 바꾸고, 바뀐 규칙을 지킬 조직을 남겼다. 이 과정을 따라가면 한국형 세금감시운동이 시작할 자리도 보인다.
시민이 보내온 고지서 한 장과 대출 상환표 한 장을 함께 펼쳐보는 것이다. 집의 가격, 남은 빚, 매달 들어오는 소득, 이자와 세금을 내고 남는 생활비를 나란히 놓아야 한 가정의 형편이 보인다.
세금을 더 걷겠다는 설명 앞에서도 이 살림을 보여줘야 한다. 누구에게 부담이 늘어나는지, 그 사람이 어떤 돈으로 세금을 낼 수 있는지, 정부는 더 걷기 전에 어떤 지출을 줄였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책임 있는 사람의 답을 받아두고, 그 답과 실제 행동을 기록하는 것이다.
세금을 내는 사람에게는 자기 삶을 설명할 목소리가 있다. 흩어진 목소리가 모이면 정부가 지켜야 할 기준이 될 수 있다.
다음 편에서는 ATR이 정치인에게 받은 서약서 한 장을 펼쳐본다. 선거 때의 약속을 당선 뒤에도 지키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