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칼럼

탱크데이는 단죄하고, 영화의 음모론은 상상력인가

기업의 행사 문구에는 역사적 상처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에는 상상력을 내세운다. 《암살자(들)》 논란을 통해 의혹이 집단적 기억으로 굳어지는 과정과 양 진영의 역사전쟁을 짚는다.

기업의 문구와 영화의 역사

기업의 행사 문구 하나가 불매와 경영진 해임으로 이어졌다. 같은 사회에서 대통령의 부인이 숨진 실제 사건은 권력 내부의 음모를 의심하는 영화로 재구성된다. 한쪽에서는 역사의 상처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엄중한 책임을 묻고, 다른 쪽에서는 영화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다. 씨앗은 이 차이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의 기억투쟁을 본다.

올해 5월 스타벅스는 5·18 당일 진행한 ‘탱크데이’ 행사와 ‘책상에 탁!’ 문구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행사는 중단됐고 경영진 해임과 실무자 직무 배제로 이어졌다. 신세계그룹의 내부 조사에서는 관리 부실이 드러났으며, 역사 비하를 의도했는지는 경찰 조사에 맡겨졌다. 기업의 표현을 판단할 때에는 그 표현이 불러온 역사적 연상과 상처까지 책임의 범위에 들어갔다.[1](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527010007668)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도 역사적 연상을 만든다. 보도에 따르면 영화는 문세광 외의 총격 가능성과 총탄의 출처를 추적하며, 일부 등장인물은 당시 대통령 측이나 중앙정보부의 개입 가능성을 제기한다. 제작진은 기록에 상상력을 더한 극영화이고, 특정인을 배후로 규정하거나 가설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2](https://ir.newspim.com/news/view/20260929000308)[3](https://www.bbc.com/korean/articles/c6wyzy0rkp71o)

그 설명에는 영화의 형식에 관한 답이 있다. 관객에게 남는 역사적 인상에 관한 답은 더 필요하다. 기업의 문구가 만든 연상에 그렇게 엄격했다면, 실제 인물과 사건을 이용해 만든 영화의 연상도 같은 무게로 살펴야 한다.

의혹은 어떻게 기억이 되는가

영국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그의 설명에는 역사학자와 사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 함께 들어 있다. 새로운 자료를 만나면 해석도 달라져야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4](https://facultystaff.richmond.edu/~wstevens/history331texts/carr.html)

오늘의 관심으로 과거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필요하다. 국가폭력에 희생된 사람을 찾아내고, 묻힌 기록을 복원하고, 오래된 설명의 허점을 밝히는 일은 사회가 해야 할 책임이다. 민간인 학살과 인권침해를 조사해 피해자의 이름을 되찾는 작업도 그 안에 있다.

그 작업의 설득력은 증거에서 나온다.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정치적으로 매력적인 이야기로 채우면, 역사와의 대화는 오늘의 진영이 원하는 과거를 만드는 일로 바뀐다. ‘그럴 수도 있었다’는 추측과 ‘그 일이 있었다’는 사실 사이에는 증거가 놓여야 한다.

영화는 이 간격을 감정으로 건너갈 수 있다. 의심하는 인물에게 관객이 마음을 주고, 권력자의 침묵에 불길한 음악이 흐르고, 가설이 사건의 실마리처럼 배치되면 관객은 설명보다 장면을 기억하기 쉽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창작이었는지 흐려질 수 있다.

‘의혹이 있다’는 한마디가 충분한 근거처럼 쓰일 때 그 위험은 커진다. 의혹이 장면을 얻고, 장면이 감정을 얻고, 그 감정이 역사에 대한 확신으로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창작의 자유를 가진 사람에게는 자신이 만들어내는 기억을 설명할 책임도 있다.

역사를 둘러싼 진지전

씨앗은 진보 진영이 과거사 조사와 국가폭력 고발, 기념사업과 문화 콘텐츠를 통해 역사 해석의 영향력을 넓혀왔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오래 외면받던 피해가 드러났고, 국가의 책임을 묻는 성과도 있었다. 동시에 어떤 사건을 반복해서 부각하고 어떤 희생을 뒤로 미루는지에 따라 시민이 대한민국을 이해하는 틀도 달라졌다.

이것이 기억투쟁이고 상징투쟁이다. 누구를 피해자로 기억할 것인가. 누구를 가해자로 남길 것인가. 어떤 사건을 나라의 출발점으로 삼고, 어떤 희생을 국가의 정통성과 연결할 것인가. 교과서와 기념관, 영화와 유공자 제도에서 벌어지는 오랜 싸움이다. 이런 방식으로 일상의 역사 인식을 차지하는 과정이 ‘진지전’이다.

보수 역시 건국과 산업화, 호국의 기억을 통해 자신의 역사관을 세워왔다. 씨앗이 보는 양 진영의 역사전쟁에서 시민이 지켜야 할 기준은 증거다. 우리 편에 유리한 의혹이라는 이유로 근거를 느슨하게 대하면, 진실을 밝힌다는 명분으로 시민의 판단을 흐리게 된다.

북한의 서사와 겹치는 대목

이 영화의 논란에는 북한의 선전영화 《민족과 운명》도 등장한다. BBC 코리아 보도에 따르면 이 북한 영화는 육영수 여사 피격을 박정희 정권 내부의 음모로 묘사했다. 당시 한국 수사당국의 발표와 법원의 판단은 문세광의 범행 및 북한·조총련과의 연계를 인정하는 방향이었다.[3](https://www.bbc.com/korean/articles/c6wyzy0rkp71o)

《암살자(들)》에서 제기되는 권력 내부 개입 가설은 북한이 오래 유포해온 서사와 맞닿는 지점이 있다. 그 가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려면 기존 판단을 흔들 만한 새로운 자료가 무엇인지 보여줘야 한다. 대한민국의 수사와 재판을 의심하는 데 적용한 엄격함을 북한의 주장에도 적용해야 한다.

국가를 비판하는 작품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그 비판이 힘을 얻으려면 북한이 자신의 책임을 지우기 위해 만든 이야기까지 검증해야 한다. 권력에 대한 의심만으로 그 검증을 건너뛰면, 과거를 새롭게 읽는다는 작업이 오래된 선전을 다시 유통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자본과 작품의 관계도 확인해야 한다

하이브미디어코프를 둘러싼 중국계 자본 의혹은 투자 경위부터 확인할 사안이다. 2023년 더벨은 미래에셋증권과 CLSA캐피탈파트너스코리아 컨소시엄의 400억 원 규모 투자 추진을 보도했다. 당시 기사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펀드 결성, 향후 거래 완료 계획을 다뤘다. 하이브미디어코프는 지난 9월 29일 회사와 《암살자(들)》의 제작·투자 과정에 중국 자본이 유입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5](https://www.thebell.co.kr/front/newsview.asp?key=202310181345577280109374)[6](https://www.yna.co.kr/view/AKR20260929108400005)

확인할 내용은 구체적이다. 당시 추진된 거래의 최종 결과, 현재 주주와 투자자 구성, 이번 영화의 자금 조달 경위다. 자본이 작품의 방향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에는 기획과 제작 결정에 관여한 자료까지 필요하다. 투자 보도와 영화의 정치적 해석을 곧바로 연결하면, 이 글이 비판하는 추측의 방식이 되풀이된다.

하이브미디어코프는 《남산의 부장들》과 《서울의 봄》 등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들을 제작해왔다.[7](https://magazine.kofic.or.kr/webzine/web/2429/pdsView.do) 한 제작사의 역사적 시각이 반복해서 대중에게 전달되는 만큼, 작품별로 무엇이 기록에 근거했고 무엇이 창작됐는지 비교해볼 이유는 충분하다. 그 검토는 작품의 장면과 자료, 투자와 제작 경위를 근거로 해야 한다.

어떤 희생을 오늘의 국가가 기억하는가

씨앗은 6·25전쟁을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깊고 아픈 기억으로 본다. 북한의 남침으로 삶의 터전이 무너졌고,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가족과 헤어졌다. 오늘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 참전유공자들은 이제 고령의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2026년 국가 참전명예수당은 월 49만 원이다. 지방자치단체 수당이 더해지지만 지역별 격차가 크고, 저소득 참전유공자의 생활 문제도 남아 있다. 서울신문은 지난해 4월 기준 전체 참전유공자의 8.6%가 중위소득 50% 이하에 해당한다고 보도했다. 나라가 기억한다는 말은 이들의 생활을 얼마나 지켜주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8](https://sangdam.mpva.go.kr/faq/userQuestionDetail.do?selectedId=000002484)[9](https://m.go.seoul.co.kr/news/society/2026/06/25/20260625001006)

한편 올해 전주시의회와 전북 시군의회의장협의회는 1894년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 서훈 대상에 포함하도록 법령 개정을 촉구했다.[10](https://www.yna.co.kr/view/AKR20260226113900055) 과거의 희생을 새롭게 평가하는 논의가 이어지는 만큼, 그 인정 기준과 예우의 범위도 시민에게 설명돼야 한다. 새로운 기념과 서훈에 쏟는 관심이 지금 살아 있는 참전유공자의 빈곤과 지역별 격차에도 이어져야 한다.

역사전쟁에서 시민이 지켜야 할 것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에는 기록을 남길 권력에 대한 경계가 담겨 있다. 오늘날에는 과거의 기록을 뒤집는 쪽도 새로운 기억을 만들 힘을 갖는다. 영화와 기념사업으로 어떤 이야기를 반복하느냐에 따라 다음 세대가 기억하는 역사도 달라질 수 있다.

씨앗은 《암살자(들)》 논란을 집단적 기억의 주도권을 둘러싼 역사전쟁으로 본다. 표현의 자유는 그 안에서 지켜야 할 원칙이다. 시민이 작품의 근거를 따지고 역사적 책임을 묻는 자유도 함께 보장돼야 한다.

어떤 장면에 어떤 사료가 있는가. 기존 판단을 바꿀 새로운 증거는 무엇인가. 투자와 제작 결정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국가의 예우는 실제 시민의 삶에 얼마나 닿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자료가 쌓여야 과거를 다시 읽는 일이 설득력을 얻는다.

과거와 대화하려면 과거가 남긴 증거를 존중해야 한다. 의혹에 생생한 장면을 입힌 뒤 사실을 아는 듯한 확신을 남긴다면, 시민의 역사 인식은 흐려진다. 그 확신이 어느 진영에 유리하든 씨앗은 같은 기준으로 살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