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AI 시대라는 이름으로 국민 세금으로 표를 사려는가
2021년의 기본소득 공약이 AI 시대의 분배 문제와 뒤섞이고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의 2027년 확대 예산안과 AI 생산성 배당의 차이를 검증하고, 국민 세금으로 정치적 지지를 얻는 구조를 비판한다.
AI 시대의 기본소득, 무엇이 혼동되고 있는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 온 경제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세계적인 기술기업의 경영자와 경제학자들은 AI가 창출하는 막대한 부를 시민들에게 어떻게 나눌 것인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기본소득이라는 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오랫동안 추진해 온 기본소득 정책에 AI 시대라는 새로운 명분이 덧씌워지고 있다. 미래의 기술혁명에 대비한 경제적 분배의 문제와 현재 국민 세금으로 현금성 급여를 지급하는 재정정책이 같은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의 혼동은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이 AI 시대의 소득보장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과 이재명 정부의 기본소득 정책에 동의하는 것은 서로 다른 판단이다. AI가 가져올 미래의 불확실성이 현재 정부의 재정지출 정책을 정당화하는 백지수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AI가 창출한 부를 나누는 것과 국민 세금을 나눠주는 것은 다르다
AI 시대의 새로운 분배론이 제기하는 핵심 질문은 분명하다.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면 그 성과를 소수 기업과 자본 소유자에게만 귀속시킬 것인가, 시민들도 경제적 성과를 공유하도록 할 것인가.
해외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AI 배당(AI Dividend), 사회배당(Social Dividend), 공공자산펀드(Public Wealth Fund) 등의 개념으로 논의하고 있다. 특히 AI 기업과 기술산업에 대한 공적 투자에서 발생한 수익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이는 AI 생산성 배당이라는 별도의 개념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창출된 경제적 성과가 무엇인지, 어떤 수익에 시민의 배당권을 인정할 것인지, 어떤 기금과 제도를 통해 나눌 것인지가 논의의 출발점이다. 조세를 활용하는 방식도 가능하지만, 그 경우에도 재원과 배분의 경제적 근거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반면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농어촌 기본소득은 국가와 지방정부의 재정으로 특정 지역 주민에게 정기적으로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AI 기업의 이익을 시민에게 배당하는 제도가 아니다. 사업의 목적 역시 AI에 의한 실업 대책이 아니라 농어촌 인구감소 대응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있다.[6]
두 제도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그런데도 정부가 AI 시대의 소득분배 문제를 기존 기본소득 정책과 하나의 흐름으로 설명하면 시민들은 둘을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AI 시대에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이재명 정부의 기본소득 정책도 시대적으로 불가피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21년의 기본소득이 2026년에는 AI 시대의 해법이 되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기본소득론은 최근 AI 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 등장한 정책이 아니다. 그는 2021년 대통령선거를 준비하면서 전 국민에게 연간 100만 원, 청년에게는 연간 20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재원 조달 방안으로는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등 새로운 조세를 제시했다.[1]
당시에도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감소가 기본소득의 근거로 제시됐다. 기본소득은 이미 이재명 정치의 핵심 정책이었다.
그런데 올해 4월 27일 이 대통령은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AI 시대에 기본소득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하사비스는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주택·교육·교통·의료 등 기본서비스와 자본시장 원리를 결합한 새로운 경제모델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2][3]
AI가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을 논의하는 것은 대통령의 당연한 책무다. 하지만 세계적인 AI 전문가가 미래의 소득분배 문제를 논의했다는 사실이 대통령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특정 기본소득 정책의 타당성을 입증해 주지는 않는다.
같은 해 5월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AI 산업 호황으로 발생한 초과세수를 국민에게 배당하는 구상을 제안했다. 이 대통령도 기업의 초과이윤을 직접 배당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국가의 초과세수 활용을 검토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4][5]
여기서 논의해야 할 것은 AI 산업에서 발생한 세수를 어떤 원칙으로 활용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하는가이다. 일시적인 초과세수를 영구적인 소득지급제도의 재원으로 삼을 수 있는지, 산업경쟁력과 기술혁신을 위한 투자보다 우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검증이 먼저다.
AI 시대라는 말이 기존 정책의 정당성을 자동으로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니다.
시험사업의 성적표도 나오기 전에 확대부터 결정하고 있다
정부는 2026년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17개 군으로 확대된 사업은 대상 지역 주민에게 월 15만 원의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는 구조다. 정부는 2027년 사업 대상 지역을 35개 군으로 늘리고, 관련 예산도 2026년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3,047억 원에서 1조 1,658억 원으로 확대하는 예산안을 마련했다.[6][7]
아직 시범사업의 장기적인 성과를 검증할 충분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상 지역과 예산의 대폭 확대가 추진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농어촌 기본소득의 영구 도입과 지급액 상향 가능성까지 직접 언급했다.[8]
정부는 농어촌 인구감소를 막고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한다. 주민들의 소비가 늘어나면 지역 상권이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그렇다면 그 효과부터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 기본소득을 지급한 지역의 인구 증가가 실제 정착으로 이어졌는지, 단순한 주소 이전 효과는 아닌지, 소비 증가가 지역 전체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얼마나 늘렸는지 확인해야 한다. 기본소득을 받지 않은 유사 지역과의 비교도 필요하다.
특히 정부가 돈을 지급하면 그 지역의 인구와 소비가 일시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그것이 반드시 지속가능한 지역경제의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농어촌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따져야 한다. 일자리와 산업기반, 의료와 교통, 돌봄과 교육이 무너진 지역에 매월 상품권을 지급하는 것과 생활기반 자체를 복원하는 것 중 어느 정책이 더 효과적인가.
정책실험은 정책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존재한다. 사업의 효과가 충분히 확인되기도 전에 확대와 영구화를 앞세운다면, 그것은 실험의 목적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일이다.
국민 세금으로 지급하면서 정부의 선물처럼 포장하는 정치
기본소득 정책에는 선거와 결합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 유인이 있다. 정부가 국민에게 일정한 돈을 지급하면 혜택은 즉각적이고 분명하다. 반면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부담해야 할 세금과 다른 공공서비스의 기회비용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정치인은 지급액을 약속하고, 정부는 지급 실적을 홍보하며, 국민은 눈앞의 혜택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 돈은 정치인의 사유재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국민이 낸 세금이며 미래 세대가 부담할 수도 있는 공공재정이다.
이런 구조에서 기본소득은 강력한 정치적 동원 수단이 될 위험이 있다. 지급 대상과 금액을 늘리는 정치인은 즉각적인 지지를 기대할 수 있지만, 재정 건전성과 정책 효과를 따지는 정치인은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다. 현금성 급여의 확대 경쟁이 시작되면 그 부담은 결국 국가와 지방정부의 재정에 쌓인다.
《씨앗의 소리》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정책적 매표정치**다.
여기서 말하는 매표는 특정한 투표행위의 대가로 금품을 제공하는 법률상의 매수행위를 뜻하지 않는다. 공공재정으로 국민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면서 그 정치적 성과를 권력이 독점하려는 정책 방식에 대한 비판이다.
정부가 국민에게 지급하는 돈은 정부의 선물이 될 수 없다.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의 표를 얻으려는 정치가 반복된다면 재정정책은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비판은 지원금을 받는 시민을 향한 것이 아니다. 어려운 형편의 시민들이 지원금을 신청하고 사용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다. 문제는 그 필요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부와 정치권력의 책임에 있다.
시민을 국가의 수급자로 만드는 정치가 우려스럽다
씨앗의 관점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시민과 국가의 관계다. 시민은 국가가 지급하는 급여에 의존하는 존재로만 규정될 수 없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국가의 정책을 감시하며, 공공재정의 사용에 책임을 묻는 주체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시민이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갈 기회를 넓히는 것이다. 기업이 자유롭게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교육과 직업전환의 기회를 제공하며, 생계가 어려운 시민에게는 충분하고 실질적인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
소득보장이 필요한 시민을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책무다. 그러나 그 필요를 이유로 모든 시민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재정 여력과 정책 효과, 기존 복지제도의 사각지대, 지원의 우선순위를 함께 따져야 한다.
특히 AI 시대에는 시민이 새로운 기술의 소비자로만 남아서는 곤란하다. 시민이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기업과 창업에 참여하며, 새로운 자산을 형성할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AI의 경제적 성과를 공유하는 제도 역시 시민의 경제적 독립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검토돼야 한다.
국가가 매달 얼마를 지급하느냐보다 시민이 어떻게 경제적 자립을 유지하고 새로운 부의 창출에 참여할 수 있느냐가 더 근본적인 과제다.
이재명 정부는 AI와 기본소득을 분리해서 설명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AI 시대의 경제적 불평등을 걱정한다면 먼저 AI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는지, 어느 계층의 소득을 감소시키는지, 어떤 산업에서 얼마의 경제적 성과가 발생하고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AI 생산성 증가의 수익을 시민에게 공유하는 제도와 일반 조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 정책을 구별해야 한다. AI 산업의 경제적 성과를 배당하는 구상이라면 배당재원과 수익권의 근거를 밝히고, 일반적인 소득보장정책이라면 그 효과와 재정 부담을 입증해야 한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농어촌 정책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AI 시대의 미래 소득분배론을 그 정책의 정당화 근거로 삼으려면 두 제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부터 증명해야 한다.
국민이 AI 시대의 기본소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고 해서 이재명 정부의 기본소득 정책을 승인한 것은 아니다. AI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기존 정책에 대한 검증을 생략하는 이유가 될 수도 없다.
**기술혁명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지급하는 현재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 실질적인 정책 효과보다 지급액과 수혜자의 확대를 앞세우고, 그 결과를 정치적 지지로 연결하려 한다면 기본소득은 복지정책의 이름을 빌린 매표정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증명할 책임은 시민에게 있지 않다. 그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에 있다.
AI 시대의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권력이 나눠주는 돈에 대한 기대만이 아니다. 자신의 노동과 창의성으로 미래를 개척하고, 기술혁신의 경제적 성과에 참여하며, 국가의 권력과 재정을 감시할 수 있는 자유다.
이재명 정부는 기본소득이 시대의 흐름이라고 주장하기 전에 국민에게 먼저 답해야 한다.
**왜 지금 이 돈을 지급해야 하는가. 그 돈은 어디서 오는가. 무엇을 포기하고 지급하는가. 그리고 그 정책으로 국민의 삶이 실제로 얼마나 나아지는가.**
이 질문에 대한 검증 없이 기본소득을 확대하는 정치는 시민의 미래보다 눈앞의 정치적 성과를 앞세운다는 비판을 자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