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칼럼

입법독재의 시대

사법제도 개편과 수사권 이동, 대법관 제청 갈등과 공공기관 인사를 통해 입법 다수의 권력과 시민의 자유를 지키는 견제의 기준을 살펴본다.

동물농장이 던진 질문

지난 10월 30일 한 현직 판사가 법원 내부망에 글을 올렸다. 제목은 ‘소설 동물농장에 관하여’였다.

인천지법 부천지원의 성찬용 판사는 검찰청 폐지와 대법관 증원, 법왜곡죄 신설과 재판소원 도입,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와 국정조사 시도 등을 거론하며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떠올렸다. 사법부의 독립이 위태로운데도 법원 내부가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호소였다.[1]

《동물농장》에서 동물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던 인간을 몰아낸다. 모두가 평등한 농장을 만들겠다는 약속도 세운다. 그러나 혁명을 주도한 돼지들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약속은 조금씩 바뀐다. 규칙은 지배자에게 유리하게 고쳐지고, 평등을 외쳤던 혁명은 새로운 특권을 만들어낸다.

성 판사의 글이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소설 속 장면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개혁과 공정을 외치며 등장한 권력이 법과 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고,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에는 낡은 기득권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모습이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개혁의 이름으로 바뀌는 사법 질서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어온 이유가 없지 않다. 재판은 지나치게 오래 걸리고, 같은 법 앞에서 누구는 관대하고 누구는 가혹한 대우를 받는다는 불신도 크다. 법관의 잘못을 견제할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정치권에 사법제도를 마음대로 바꿀 권한까지 주는 것은 아니다. 사법부를 국민에게 책임지는 기관으로 만드는 것과 사법부를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기관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올해 3월 법왜곡죄와 재판소원제가 시행됐다. 법왜곡죄는 형사사건의 재판이나 수사에 관여하는 사람이 법에 정한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법을 왜곡한 경우 처벌하는 제도다. 재판소원제는 법원의 재판이 헌법에 어긋나는지를 헌법재판소에서 다툴 수 있도록 했다.

대법관을 늘리는 법도 공포됐다. 현재 14명인 대법관은 2028년부터 단계적으로 늘어나 2030년에는 26명이 된다. 아직 대법관이 두 배로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대법원의 구성과 재판 체계에 큰 변화가 예정돼 있다.[2]

각 제도에는 제각각 내세우는 이유가 있다. 잘못된 재판으로 침해된 권리를 구제하고, 재판 지연을 줄이며, 고의적인 법 적용의 왜곡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들이 한꺼번에 움직일 때 사법부의 판단은 어디까지 독립적일 수 있는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맡은 법관이 판결 이후의 형사처벌 가능성을 걱정하고, 대법원 판결에 불만을 가진 권력이 다른 제도를 통해 계속 압박할 수 있다고 느낀다면 그 재판은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대법관 증원 역시 재판 지연 해소라는 목적만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누가 어떤 절차로 새 대법관을 제청하고 임명하는지, 구성의 변화가 재판의 독립성과 다양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국민이 지켜봐야 한다.

성찬용 판사가 던진 질문도 여기에 있다. 지금의 변화가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이 아니라 모든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권력은 사법개혁이라는 구호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제도의 내용과 실제 결과로 답해야 한다.

대법원장을 증인석에 앉힌 국회

지난 10월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일반증인으로 채택돼 출석했다. 대법관 후보 제청을 둘러싼 청와대와의 갈등이 배경이었다.

조 대법원장은 증인 선서와 제청 관련 증언을 거부했다. 그는 헌법이 대법관 임명 과정에서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을, 국회에 동의권을,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부여하고 있다며 국회와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 독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3]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한 기관이 대법원 구성에 관한 모든 권한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권한을 나누어 놓은 것이다.

국회는 대법원과 대법관 후보자를 검증할 권한이 있다. 대법원장에게도 국민을 향해 설명하고 책임질 일이 있다. 그러나 국회의 검증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제청을 압박하고 사법부의 고유한 권한을 정치적 요구에 종속시키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청와대와의 사전 협의 관행을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조 대법원장은 과거의 협의가 원활한 임명을 위한 협력이었으며,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헌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여당은 기존 관행을 깨고 제청한 경위를 국회가 따져야 한다고 맞섰다.[4]

헌법기관 사이에 의견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갈등을 푸는 과정에서 국회 다수의 힘으로 상대 기관을 몰아붙인다면, 견제는 지배로 변한다. 삼권분립은 권력이 마음에 들지 않는 기관을 굴복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검찰을 없앤 자리에 무엇이 들어섰는가

검찰청도 지난 10월 사라졌다. 오랜 기간 수사와 기소를 함께 담당해 온 검찰 조직을 폐지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새로운 체계가 출범했다.

검찰권이 지나치게 집중돼 있었고, 정치적 수사와 선택적 기소에 대한 불신이 컸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개편 이후에는 수사기관이 더 공정해지고 권력으로부터 더 독립됐는지를 따져야 한다.

새 체계에서는 공소청이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고, 경찰과 중대범죄수사청 등이 수사를 맡는다. 검찰청이 사라졌다고 수사권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수사권이 어디로 이동했고, 그 기관들을 누가 어떻게 통제하는지가 새롭게 중요해졌다.[5]

검찰의 권한 집중을 비판하면서 행정부 소속 수사기관에 권한이 모이는 문제에는 침묵한다면 그것이 무슨 권력 분산인가. 이름을 바꾸고 조직을 나누는 것만으로 수사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힘없는 시민은 어느 기관의 간판이 바뀌었는지보다 부당한 수사를 받았을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권력자에게 관대한 수사, 반대자에게 가혹한 수사가 계속된다면 제도개편의 비용은 시민이 치르고 권력만 더 편해질 수 있다.

공정의 기준은 권력 앞에서 달라지는가

사법제도만이 아니다. 공공기관 인사에서도 권력이 말하는 공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게 된다.

하동근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은 선발 과정에서 서류심사를 통과한 8명 가운데 8위, 면접 대상 5명 가운데 5위를 기록하고도 임명됐다. 야당은 하 사장과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과거 인연을 거론하며 인선 경위를 문제 삼았다. 하 사장은 국정감사에서 김 실장과 특별한 관계가 없으며 최종 선택의 기준은 심사 순위와 다를 수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6][7]

남광우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 역시 서류심사 3위, 면접심사 2위를 기록하고 두 심사에서 모두 1위를 한 지원자를 제치고 임명된 사실이 보도됐다.[8]

공공기관장 선임이 반드시 시험 점수순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조직을 운영할 능력과 정책을 수행할 역량을 함께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최종 선택에서 무엇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설명하면 된다.

서류와 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지원자보다 다른 후보가 기관을 이끌기에 더 적합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기관의 업무와 어떤 전문성이 연결되는가. 추천위원회와 주무부처는 어떤 근거로 판단했는가.

권력과의 인연이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은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당사자가 부인하고 있는 만큼 인연만으로 부당한 개입을 사실처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설명되지 않은 인사는 그 자체로 공정한 경쟁에 대한 신뢰를 허문다.

취업을 위해 서류를 준비하고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를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묻고 싶다. 공공기관의 최고 책임자를 뽑는 과정에서조차 평가 순위와 최종 결과 사이의 차이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어떤 공정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다수 의석은 무제한 권력이 아니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법권을 맡긴다. 다수당은 자신의 정책을 추진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의석이 많다는 이유로 헌법기관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반대 의견을 무시하며, 중요한 제도를 속도전으로 밀어붙일 권리까지 얻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로 움직인다. 동시에 다수가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시민의 권리와 권력의 한계를 지키는 제도다. 사법부의 독립, 적법한 절차, 법 앞의 평등은 다수당이 필요에 따라 바꾸거나 무시할 수 있는 장식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신에게 불리한 제도를 없애고 유리한 제도를 만드는 일이 반복된다면, 법은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기준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쪽의 무기가 된다.

오늘 여당이 만든 무기는 내일 다른 세력의 손에 들어갈 수 있다. 지금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며 사법부를 압박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자신들이 만든 제도 앞에서 보호를 구해야 할지 모른다.

그때 남아 있어야 할 것은 특정 정치인을 위한 예외가 아니다. 권력자의 편도 반대편도 아닌 시민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으로 적용되는 법이다.

시민의 자유를 지키는 마지막 기준

성찬용 판사의 글에 동료 법관들의 공감이 이어졌다. 반대로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어온 과정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법관의 반론도 나왔다.[9]

그 논쟁은 필요하다. 사법부의 독립은 법관의 특권을 지키기 위한 방패가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과 다투는 시민이, 행정기관의 처분에 맞서는 사업자가, 억울한 수사를 받는 사람이 정치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재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사법부의 독립은 그 시민의 권리다.

법원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재판 지연을 줄이고, 판결을 더 충실히 설명하고, 내부의 잘못에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동시에 정치권이 법원의 약점을 빌미로 사법권을 장악하려는 시도에는 분명히 맞서야 한다.

국민이 국회에 맡긴 것은 **권력을 견제할 입법권**이다. 권력에 불편한 기관을 길들이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질서를 만들라는 백지위임장이 아니다.

앞으로 시민이 살펴야 할 기준은 분명하다. 새 수사기관이 권력형 사건과 일반 시민의 사건을 같은 원칙으로 처리하는가. 법왜곡죄가 독립적인 판단을 위축시키는 도구로 쓰이지 않는가. 증원되는 대법관은 어떤 기준과 절차로 임명되는가. 공공기관장 인사의 평가와 최종 선택은 납득할 수 있게 설명되는가.

법이 바뀔 때마다 권력이 더 편해지고 시민이 기댈 곳은 줄어든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다. 국민의 이름으로 권력을 키우는 입법독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