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드 시민브리핑 09
국가가 키우는 사회적경제, 공정한가
국가가 ‘좋은 기업’을 판별하고 보조금·정책금융·공공구매·위탁까지 연결해 하나의 사회적경제 산업생태계를 만들기 시작하면 경쟁의 규칙도 바뀝니다. 사회적경제를 돕는 것과 국가가 특정 기업을 대신 키우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국가는 좋은 기업을 고르지 말고, 좋은 행동이 선택받는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국가가 어떤 기업을 ‘사회적으로 좋은 기업’이라고 판별하고, 그 기업에 보조금과 정책금융을 제공하고, 공공기관이 제품을 우선구매하고, 공공서비스 위탁에서도 우대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단순한 지원을 넘어섭니다. 국가는 시장의 조력자가 아니라 특정 기업군의 경쟁조건과 판로를 설계하는 주체가 됩니다.
물론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마을기업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만드는 일은 가치가 있습니다. 시민들이 스스로 필요를 발견하고 돈과 시간, 책임을 나누는 활동은 건강한 시민사회의 중요한 자산입니다. 그러나 사회적경제를 돕는 것과 국가가 ‘좋은 기업’을 직접 골라 산업생태계로 키우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이번 브리핑의 질문은 그래서 하나입니다. 사회적경제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가 아닙니다. **국가는 좋은 기업을 고르지 말고, 좋은 행동이 선택받는 시장을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이 원칙을 기준으로 공정경쟁, 국가주도 산업생태계, 정책 실패의 책임, 그리고 가능한 대안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논란 — 한쪽의 지원은 다른 쪽의 경쟁조건을 바꿉니다
지원은 공짜로 생기지 않습니다. 정부가 특정 조직에 보조금과 저리 금융을 제공하고 공공기관이 그 조직의 제품을 우선구매하거나 계약에서 먼저 고려하면 그 비용은 세금으로 부담되고 경쟁조건도 달라집니다.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반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이 있다면 국가는 왜 서로 다른 출발선이 정당한지 설명해야 합니다.
이 우려는 가정에 그치지 않습니다. 정부의 사회적경제 정책 성과관리 자료에는 ‘일반 중소기업·소상공인 등 여타 기업·법인들에 대한 역차별 우려’가 갈등요인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수원시도 사회적경제기업 공공구매 확대 계획에서 ‘일반기업의 수주 기회 감소로 업체 반발 우려’와 특정업체 계약 편중에 따른 공정성 문제를 적었습니다.
건설업에서도 충돌 사례가 있었습니다. 사회적협동조합의 건설시장 진입과 공공조달 참여 확대를 둘러싸고 기존 업계는 중소업체의 수주 기회 감소와 공정경쟁 훼손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의 시장 진입을 막자는 뜻이 아니라, 같은 시장에 들어오면 같은 안전·품질·가격·책임 기준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문제입니다.
두 번째 논란 — 지원이 겹치면 국가주도 산업생태계가 됩니다
문제는 개별 보조금 하나보다 여러 지원이 서로 연결될 때 커집니다. 인증을 받은 조직이 인건비 지원을 받고, 정책금융과 보증을 이용하고, 공공기관 우선구매 대상이 되고, 공공서비스 위탁에서도 우대를 받는다면 지원은 사실상 하나의 산업생태계가 됩니다.
그 생태계 안에서는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능력보다 정부 사업에 선정되는 능력이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시민의 회비나 매출이 줄어도 공공계약으로 살아남을 수 있고, 반대로 시민에게 필요한 일반기업이라도 정책적 지위가 없으면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시장의 판단보다 행정기관의 분류와 예산이 생존을 더 크게 좌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정부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닙니다. 어떤 조직을 지원할지 정하고 자금과 판로를 연결하며 경쟁조건까지 설계하는 생태계의 조직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지원받는 조직의 성과만이 아니라 지원받지 못한 기업의 손실과 시장구조의 변화까지 정부가 함께 측정해야 합니다.
세 번째 논란 — 정책이 실패해도 기존 시장은 자동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청년몰의 경험은 공급자 지원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정부는 공간과 임대료, 교육과 홍보를 지원했지만 상당수 점포와 상권은 지원 이후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정부는 가게를 만들 수 있지만 손님과 신뢰까지 만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실패 뒤입니다. 정책적 우대를 받은 사업자가 공공계약이나 정책금융을 선점하는 동안 기존 사업자가 매출을 잃고 폐업했다면, 나중에 지원사업이 실패했다고 해서 시장이 원상복구되지는 않습니다. 이미 사라진 가게와 거래관계, 축적된 기술과 일자리는 쉽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국가는 지원을 시작하기 전에 혜택만 계산할 것이 아니라 기존 시장에 미칠 손실까지 평가해야 합니다. 정책이 끝난 뒤에는 지원기업의 생존율뿐 아니라 경쟁기업의 수주·매출 변화와 시장 진입·퇴출을 함께 공개해야 합니다. 국가가 경쟁의 규칙을 바꾸었다면 그 결과에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네 번째 논란 — ‘좋은 일’은 질문을 막는 면허가 아닙니다
사회연대경제는 지역을 살리고 취약계층을 돕고 공동체를 회복한다는 좋은 언어로 설명됩니다. 그러나 좋은 목적이 정책 검증을 면제해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세금과 공공자원이 투입되는 좋은 일일수록 얼마를 썼는지, 누구에게 갔는지,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누가 불이익을 받았는지를 더 엄격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취약계층을 돕는 일인데 왜 반대하느냐’,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일인데 왜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방식으로 질문 자체를 부도덕한 것으로 만들면 공익은 비판을 막는 방패가 됩니다. 권위주의는 반드시 강압적인 명령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하기 어려운 선한 가치를 앞세워 시민의 질문을 봉쇄하는 방식으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민주사회에서 공익은 질문을 금지하는 말이 아니라 더 많은 질문을 요구하는 말이어야 합니다. 공익이라는 이름도, 사회적 가치라는 이름도 경쟁의 공정성과 정책의 책임성을 무시할 수 있는 면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도울 것인가 — 국가가 기업을 고르지 않는 다섯 가지 방법
사회적경제를 키우기 위해 국가가 특정 기업을 직접 골라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원의 초점을 ‘누가 사회적기업인가’에서 ‘누가 실제로 좋은 행동과 성과를 만들었는가’로 옮기면 사회적 가치와 공정경쟁을 함께 추구할 수 있습니다.
핵심 원칙은 단순합니다. **국가는 좋은 기업을 고르지 말고, 좋은 행동이 선택받는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원칙을 정책으로 옮기면 다음 다섯 가지 대안이 가능합니다.
- ① 기업의 신분이 아니라 성과를 지원합니다. 사회적기업 인증 여부가 아니라 장애인 고용, 지역 일자리, 이용자 만족도, 탄소감축처럼 측정 가능한 성과를 기준으로 보상하면 일반기업과 사회적기업이 같은 기준에서 경쟁할 수 있습니다.
- ② 정부 인증 대신 민간 인증과 평판시장을 키웁니다. 정부가 ‘좋은 기업’을 지정하기보다 복수의 민간 평가기관이 공개된 기준으로 평가하고, 소비자·투자자·근로자가 그 정보를 보고 선택하도록 합니다. B Corp는 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③ 보조금 대신 시민투자와 지역투자를 넓힙니다. 정부가 세금으로 특정 조직을 키우기보다 시민과 지역주민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업에 자신의 돈을 투자하고 위험과 성과를 함께 부담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방식입니다.
- ④ 직접지원 대신 민간투자를 촉진하는 세제 인센티브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투자대상을 직접 고르지 않고, 일정한 투명성·성과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에 투자한 시민·기업·재단에 세제상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선택과 위험 판단은 민간에 남길 수 있습니다.
- ⑤ 공공조달을 ‘기업 유형 우대’에서 ‘성과 경쟁’으로 바꿉니다. 사회적기업이라는 법적 지위 때문에 우선구매하는 대신 가격·품질·안전·이용자 만족과 계약 목적에 직접 관련된 사회적 성과를 모든 입찰기업에 동일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B Corp가 보여주는 가능성과 한계
B Corp는 정부가 사회적기업을 지정해 재정이나 공공조달 혜택을 주는 제도가 아니라 민간 비영리기관이 사회·환경·거버넌스 기준을 평가하고 소비자와 투자자가 그 정보를 참고하도록 하는 모델입니다. 정부의 인증서가 직접적인 매출이나 계약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가 선별형 지원과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민간 인증도 정답은 아닙니다. 인증기관이 새로운 권위가 될 수 있고 평가기준이나 그린워싱 논란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간 인증 역시 기준, 수수료, 이해관계, 인증 취소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여러 평가기관이 경쟁하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씨앗의 소리는 B Corp를 그대로 수입하자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국가가 좋은 기업을 대신 결정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기업의 실제 행동을 공개하고 시민이 판단할 수 있는 구조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B Corp 사례의 장점과 한계는 별도 심층분석에서 자세히 살펴봅니다.
결론 — 사회적경제를 키우되, 국가가 시장을 대신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사회적경제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동하고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은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다만 그 힘은 정부의 인증서와 우선계약보다 시민의 신뢰와 선택에서 나와야 오래갑니다.
국가가 특정 기업을 선한 기업으로 지정하고 대신 키우는 사회보다, 모든 기업이 같은 경기장에서 좋은 행동을 증명하고 시민이 자신의 돈과 선택으로 보상하는 사회가 더 건강합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좋은 기업의 후견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규칙, 투명한 정보, 실패에 대한 책임 원칙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회적경제를 키우는 것과 국가가 사회적기업을 키우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국가는 좋은 기업을 고르지 말고, 좋은 행동이 선택받는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회적 가치와 기업의 자유, 그리고 공정을 함께 지키는 길입니다.
시민이 지켜볼 점
- 사회연대경제기본법 하위법령에서 우선구매·민간위탁·금융지원 대상과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되는지
- 일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수주·매출·시장진입·퇴출에 미치는 영향을 정부가 별도로 측정하는지
- 보조금·정책금융·보증·공공계약의 중복 수혜 내역을 공개하는지
- 사회연대경제 조직과 일반기업을 동일한 가격·품질·성과 기준으로 비교하는 장치가 마련되는지
- 지원 종료 뒤 생존율과 자체 매출, 시민의 재구매·만족도뿐 아니라 기존 시장의 변화까지 공개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