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드 시민브리핑 09
국가가 키우는 사회적경제, 공정한가
사회적경제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국가가 ‘좋은 기업’을 골라 보조금·정책금융·공공구매·위탁까지 연결할 때 생깁니다. 정부도 기존의 ‘획일적 육성’에서 ‘자생력 제고’로 정책 전환을 선언했습니다. 이제 기업의 신분이 아니라 실제 사회적 성과를 평가하고, 시민이 선택하는 구조로 바꿔야 합니다.
사회적경제는 필요합니다.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만들고, 돌봄의 빈틈을 메우고, 시장과 국가가 놓친 지역의 문제를 시민들이 직접 해결하는 일은 분명 가치가 있습니다.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마을기업이 그런 역할을 해온 사례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사회적경제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묻는 글이 아닙니다. 질문은 이것입니다. **사회적 가치를 만든다는 이유로 국가가 특정 기업과 조직을 골라 자금과 판로, 공공계약까지 연결해도 되는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좋은 기업은 국가가 골라야 합니까, 시민이 선택해야 합니까.
씨앗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국가는 좋은 기업을 고르지 말고, 좋은 행동이 선택받는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회적기업이라는 신분이 아니라 실제 성과를 평가하고, 공급자가 아니라 시민의 선택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의 중심을 옮겨야 합니다.
정부도 기존 방식의 한계를 인정했습니다
이 문제는 사회적경제를 비판하는 사람들만 제기해온 것이 아닙니다. 고용노동부는 제4차 사회적기업 기본계획(2023~2027)을 발표하면서 정책의 지원 패러다임을 ‘획일적 육성’에서 ‘자생력 제고’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회적기업의 숫자를 늘리고 직접지원을 확대하는 것과 지속가능한 사회적경제를 만드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입니다.
정부는 사회적기업이 정부 일자리사업의 수행기관처럼 인식되는 문제, 인건비 직접지원의 한계, 부정수급과 지속가능성 문제를 함께 지적했습니다. 즉, 인증과 지원 자체가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정부도 인정한 셈입니다.
그런데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을 통해 다시 사회적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자활기업·소셜벤처 등을 하나의 정책체계로 묶고 금융·판로·공공구매·공공서비스를 연결한다면 한 가지를 분명히 확인해야 합니다. 과거의 문제를 고친 것인지, 아니면 더 큰 체계로 확장하는 것인지입니다.
정부는 가게를 만들었지만 손님은 만들지 못했습니다
청년몰은 국가주도 공급자 육성정책의 한계를 이해하기 좋은 사례입니다. 정부는 2016년부터 전통시장의 빈 점포를 고쳐 청년상인에게 제공했고 임대료와 인테리어, 교육과 홍보까지 지원했습니다. 청년 일자리와 전통시장 활성화를 동시에 이루겠다는 정책이었습니다.
국비와 지방비 약 1,608억 원이 투입됐지만 2026년 2월까지 조성된 청년몰 43곳 가운데 12곳이 영업을 종료했고, 점포는 조성 당시 741곳에서 331곳으로 줄었습니다. 청년몰의 결과가 사회적경제의 실패를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국가는 공간과 공급자를 만들 수 있어도 지속적인 수요와 시민의 선택까지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점은 분명히 보여줍니다.
시장은 예산을 집행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소비자가 찾아오고, 가격과 품질을 비교하고, 다시 선택할 때 비로소 유지됩니다. **국가는 공급자를 만들 수 있지만 시민의 선택까지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이번에는 가게 하나가 아니라 생태계를 만듭니다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의 범위는 청년몰보다 훨씬 큽니다. 국가는 개별 사업 하나를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연대경제 조직을 정책적으로 정의하고, 금융·보증·공공구매·공공서비스·중간지원체계를 연결할 수 있게 됩니다.
각각의 지원만 놓고 보면 이유가 있습니다. 사회적경제 조직은 사회적 목표 때문에 비용구조가 불리하거나 자본조달이 어려울 수 있고, 돌봄·지역서비스처럼 시장만으로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영역도 있습니다. OECD도 사회적경제 조직에 대한 금융·역량지원과 사회적 조달의 필요성을 인정합니다.
문제는 지원이 중첩될 때입니다. 인증받은 조직이 보조금을 받고, 정책금융과 보증을 이용하고, 공공기관 우선구매 대상이 되고, 공공서비스 위탁에서도 우대를 받는다면 국가는 더 이상 단순한 조력자가 아닙니다. 특정 기업군의 경쟁조건과 판로를 설계하는 주체가 됩니다.
사회적 가치를 인정해도 공정경쟁 문제는 남습니다
OECD가 강조하는 원칙 가운데 하나가 경쟁중립성입니다. 정부의 규제와 지원이 기업의 법적 형태나 소유구조에 따라 특정 시장 참여자에게 불필요한 경쟁상 우위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같은 지역에 두 개의 돌봄기업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A는 일반 중소기업이고 B는 사회적경제기업입니다. 두 기업 모두 직원을 고용하고 같은 이용자에게 비슷한 돌봄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B가 정책금융과 보증, 우선구매와 공공위탁에서 추가적인 혜택을 받는다면 국가는 왜 이 차등이 정당한지 설명해야 합니다.
‘사회적 가치를 만들기 때문’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일반기업도 취약계층을 고용하고, 좋은 노동조건을 만들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며, 높은 돌봄 품질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평가해야 할 것은 기업의 이름이나 법적 신분이 아니라 실제 행동과 성과여야 합니다.
사회적기업이라는 신분과 사회적 가치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기업이라는 법적 지위를 가졌다고 해서 언제나 높은 사회적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일반기업이라고 해서 사회적 가치를 만들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정책이 기업의 지위를 기준으로 지원하기 시작하면 ‘사회적기업’과 ‘사회적 가치’가 같은 말처럼 취급될 수 있습니다.
국가는 사회적 가치의 기준을 정할 수 있습니다. 취약계층 고용, 돌봄 품질, 지역서비스 개선, 환경성과처럼 공적으로 필요한 목표를 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실현할 기업까지 미리 골라서는 안 됩니다.
**기업의 신분을 지원하는 정책에서 성과를 지원하는 정책으로 바꿔야 합니다.** 사회적기업이든 일반기업이든 같은 성과를 만들면 같은 기준에서 평가받는 것이 공정합니다.
국가가 앞에 서면 사회적경제는 커져도 시민사회는 작아질 수 있습니다
사회적경제의 본질은 경제에만 있지 않습니다. 시민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함께 해결한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의 중요한 힘도 정부 지원이 아니라 시민의 자발적 결사와 지역의 신뢰에서 나옵니다.
OECD는 지방정부와 사회적경제 조직의 협력이 불명확해질 경우 역할 중복과 긴장뿐 아니라 조직의 자율성 상실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정부 인증과 보조금, 공공사업과 계약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조직은 시민보다 행정기관의 평가표와 사업 공모를 더 중요하게 보게 될 수 있습니다.
시민에게 필요한 조직보다 정부 정책에 적합한 조직이 살아남고, 시민의 회비와 이용료보다 공공계약이 더 중요한 수입원이 된다면 사회적경제의 성격도 달라집니다. 국가를 감시해야 할 시민사회가 국가사업의 수행기관으로 변할 위험도 있습니다. **국가가 앞에 서면 사회적경제의 규모는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오히려 작아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국가가 철수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시장만으로 충분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분명 존재합니다. 돌봄은 필요한 서비스지만 높은 수익을 내기 어렵고,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에서는 시장 자체가 너무 작아 민간기업이 진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장애인이나 장기실업자의 고용도 단순한 수익 계산만으로 충분히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선택지는 국가 개입과 완전한 시장방임 사이에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느냐입니다. 국가는 조직을 고르는 대신 성과를 정할 수 있고, 기업을 지정하는 대신 규칙을 만들 수 있으며, 공급자를 보호하는 대신 시민의 선택권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대안 — 조직 지원에서 성과 지원으로 바꿔야 합니다
사회적경제를 돕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지원 방식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핵심은 ‘누가 사회적기업인가’가 아니라 ‘누가 실제로 좋은 결과를 만들었는가’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 ① 기업의 신분이 아니라 성과를 지원합니다. 취약계층 고용, 돌봄 품질, 지역서비스 개선, 이용자 만족, 환경성과처럼 측정 가능한 결과를 사회적기업과 일반기업에 동일하게 적용합니다.
- ② 공공구매를 ‘기업 유형 우대’에서 ‘성과 경쟁’으로 바꿉니다. 가격·품질·안전·사회적 성과를 모든 입찰기업에 같은 기준으로 적용하고, 실제 성과가 더 좋은 기업을 선택합니다.
- ③ 공급자보다 시민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돌봄 바우처처럼 정부가 이용자의 구매력을 지원하고 시민이 여러 공급자 중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하게 하면 돈은 시민의 선택을 따라갑니다.
- ④ 모든 지원에는 종료 조건을 둡니다. 창업 초기나 시장 형성기에 한시적으로 지원하되, 일정 기간 뒤 자체 매출과 시민의 선택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 평가합니다.
- ⑤ 보조금·정책금융·보증·시설지원·공공구매·위탁계약을 기업별로 통합 공개합니다. 지원액뿐 아니라 자체 수입 비율, 고용효과, 이용자 만족도, 지원 종료 뒤 생존 여부도 함께 공개해야 합니다.
- ⑥ 정책 수혜자뿐 아니라 기존 시장의 변화도 평가합니다. 일반 중소기업의 수주·매출·시장진입·퇴출이 어떻게 변했는지 함께 공개해 경쟁왜곡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국가는 승자를 고르는 사람이 아니라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국가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회계기준을 만들고, 지원 내역을 공개하게 하고, 부정수급을 막고, 사회적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정보가 부족한 시장에서는 기업의 행동과 성과를 비교할 수 있는 공시체계를 만드는 것도 국가가 할 일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어느 기업이 ‘좋은 기업’인지 최종적으로 판정하고 그 기업의 생존까지 뒷받침하는 단계로 가서는 안 됩니다. 국가는 승자를 고르는 심사위원이 아니라 공정한 운동장의 관리자여야 합니다.
사회적경제가 커지는 것이 정책의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 지원 없이도 시민에게 선택받는 사회적경제가 커지는 것**이 목표여야 합니다.
결론 — 사회적경제는 국가가 아니라 시민에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씨앗은 사회적경제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민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협동과 결사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기업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가 지정하고, 돈을 대고, 판로를 열고, 계약까지 연결해주는 조직이 늘어나는 것만으로 시민사회가 강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단순합니다. **그 조직은 시민에게 선택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국가에게 선택받고 있습니까.**
좋은 사회는 국가가 좋은 기업을 골라주는 사회가 아닙니다. 좋은 행동을 하는 기업이 시민에게 선택받고, 실패한 기업은 특혜 없이 퇴장하며, 국가는 경쟁의 규칙을 공정하게 지키는 사회입니다. **국가는 좋은 기업을 고르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행동이 선택받는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시민이 지켜볼 점
- 사회연대경제기본법 하위법령에서 우선구매·민간위탁·금융지원 대상과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되는지
- 사회적기업이라는 법적 지위보다 실제 사회적 성과를 평가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되는지
- 사회연대경제 조직과 일반 중소기업을 동일한 가격·품질·성과 기준으로 비교하는 장치가 마련되는지
- 보조금·정책금융·보증·공공계약의 중복 수혜 내역을 기업별로 통합 공개하는지
- 지원 종료 뒤 자체 매출과 시민의 재구매·만족도, 그리고 기존 기업의 수주·매출 변화까지 함께 측정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