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브리핑

학벌을 지운 SK하이닉스 해커톤, 실력만으로 뽑는 채용의 시작일까

SK하이닉스가 학력·전공·학점과 개발 경력을 참가 요건에서 빼고 AI 활용 능력과 문제해결 과정으로 인재를 찾는 해커톤을 엽니다. 기업이 간판보다 실력을 보겠다는 시도는 반갑습니다. 다만 포트폴리오와 AI 평가가 새로운 보이지 않는 문턱이 되지 않는지, 실제 채용까지 이어지는지는 결과로 확인해야 합니다.

기업 채용에서 출신학교와 전공, 학점은 오랫동안 지원자를 빠르게 나누는 기준으로 사용됐습니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무엇을 전공했는지, 첫 직장은 어디였는지가 실제로 무슨 일을 해낼 수 있는지를 대신 설명했습니다. 기업에는 편리했지만, 뒤늦게 역량을 키운 사람이나 전혀 다른 분야에서 실력을 쌓은 사람에게는 좀처럼 넘기 어려운 벽이었습니다.

SK하이닉스가 이 익숙한 기준을 걷어낸 해커톤을 시작합니다. 참가 신청 단계에서 출신학교·전공·학점 정보를 받지 않고 개발 경력도 참가 요건으로 두지 않습니다. 학력과 경력보다 AI를 이용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만드는 과정과 결과를 보겠다는 것입니다.

기업이 간판보다 실력을 보겠다는 변화는 반갑습니다. 정부가 기업에 채용 방식을 명령해서가 아니라, 필요한 인재를 찾으려는 기업이 스스로 기존 채용의 한계를 깨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좋은 기업은 인재를 기다리기만 하지 않습니다. 교육과 채용의 낡은 경계를 넘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냅니다.

총상금 1억원보다 눈에 띄는 것은 없앤 조건입니다

대회는 9월 28일까지 참가 신청을 받고, 10월에 두 차례 온라인 예선을 진행합니다. 11월 1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본선에서는 반도체 현장의 과제를 AI로 해결하는 능력을 평가합니다. 총상금은 1억원 이상이며, 우수 참가자는 향후 입사 지원 때 서류와 필기시험인 SKCT를 면제받는 채용 패스트트랙을 받습니다.

만 18세 이상이거나 2027년 3월까지 고등학교를 졸업할 예정이면 지원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과 해외 거주자도 일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신청할 수 있고, 신입과 경력을 가르지 않습니다. 기업 채용과 연결된 대회가 학력과 전공의 문을 이만큼 넓힌 것은 평가할 만한 시도입니다.

특히 반도체 기업이 반도체 전공자만 찾지 않는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AI 시대에는 이미 배운 지식만큼 새로운 도구를 익히고 낯선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담겨 있습니다. 학벌 없는 채용은 배려가 아니라, 기업이 더 넓은 인재 시장에서 경쟁력을 찾는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학벌의 문턱을 없앴다고 모든 문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원자는 포트폴리오를 제출해야 하고 두 차례 온라인 예선을 통과해야 합니다. 온라인 예선에서는 AI 기본지식과 활용 역량을 평가하며, 크래프톤의 AI 네이티브 평가 솔루션 코파-프로브를 비롯한 도구가 문제 정의, AI 활용, 결과 검증 과정을 살펴봅니다. 마지막에는 전문가 심사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는 학력이 사라진 자리에 아무 기준도 남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학교 이름 대신 포트폴리오가, 학점 대신 AI 도구를 다루는 경험이 들어옵니다. 정규 교육 밖에서 실력을 쌓은 사람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좋은 장비와 유료 AI 도구, 프로젝트 경험과 준비 시간을 가진 사람이 다시 유리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새로운 평가가 기존의 학벌 경쟁보다 나은지는 대회의 이름이 아니라 실제 선발 결과가 보여줄 것입니다. 출신학교를 적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기회의 격차가 사라졌다고 말하기는 이릅니다. 문턱을 없앤 뒤에는 새로 세운 문턱이 누구에게 열려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AI가 사람을 평가한다면 기준은 더 잘 보여야 합니다

공식 안내는 문제 정의, AI 활용, 결과 검증 과정을 종합적으로 본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세부 배점과 AI 평가 결과가 전문가 판단에 어느 정도 반영되는지, 참가자가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설명을 들을 수 있는지는 현재 공개된 안내만으로 충분히 알기 어렵습니다.

AI를 활용하는 능력을 AI 도구로 평가하는 실험은 흥미롭지만, 평가 기술이 새롭다는 이유로 판단 과정까지 블랙박스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학벌은 적어도 지원자가 알고 들어가는 기준이었습니다. AI 평가는 어떤 행동과 결과가 점수에 영향을 주는지 알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새로운 채용 방식을 실험할 자유는 보호돼야 합니다. 동시에 채용과 연결된 평가라면 참가자는 자신의 능력이 어떤 기준으로 판단되는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자유로운 혁신과 설명할 책임은 충돌하지 않습니다. 설명할 수 있는 혁신이 더 오래 신뢰받습니다.

한 번의 행사가 아니라 실제 채용 변화로 남아야 합니다

이번 해커톤이 의미 있는 채용 혁신으로 남으려면 화려한 본선과 상금보다 대회 이후의 숫자를 공개해야 합니다. 몇 명이 지원했고 어떤 배경의 사람들이 예선과 본선에 진출했는지, 패스트트랙 대상자 가운데 몇 명이 실제 채용됐는지, 입사 뒤에도 문제해결 역량이 확인됐는지가 중요합니다.

개인의 학교와 경력을 공개할 필요는 없습니다. 참가자의 동의를 바탕으로 비전공자, 경력전환자, 고졸 예정자, 해외 지원자 등 다양한 배경이 실제로 기회를 얻었는지를 익명 통계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탈락자에게도 최소한 평가 영역별 결과나 보완점을 돌려준다면 대회는 기업의 인재 선발을 넘어 시민이 자신의 역량을 확인하는 기회가 됩니다.

SK하이닉스가 이번 실험의 성과와 실패를 공개한다면 다른 기업도 학벌 중심 채용에서 벗어날 근거를 얻게 됩니다. 반대로 채용된 인원과 결과를 알 수 없는 일회성 행사로 끝난다면 ‘스펙을 보지 않는다’는 문구만 남게 됩니다.

기업이 기회의 문을 넓히는 방식도 사회공헌입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기부금과 봉사활동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시민이 배경 때문에 능력을 시험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장벽을 낮추고, 새로운 일자리로 연결하는 일도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입니다. 기업의 본업과 채용 과정 안에서 만들어지는 변화라서 일회성 기부보다 오래갈 가능성도 큽니다.

이번 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다만 좋은 취지가 좋은 결과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씨앗은 학력 정보를 정말 끝까지 배제하는지, AI 평가 기준을 참가자에게 충분히 설명하는지, 패스트트랙이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는지, 다양한 배경의 시민에게 기회가 돌아갔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학벌을 지운 자리에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스펙이 들어서지 않아야 합니다. 실력으로 증명하겠다는 약속은 기업도 결과로 증명해야 합니다.

시민이 지켜볼 점

  • 전체 지원자와 1·2차 예선, 본선 진출자의 규모
  • 참가자 동의를 받은 비전공자·경력전환자·고졸 예정자 등 배경별 익명 통계
  • AI 평가와 전문가 심사의 세부 기준, 배점, 이의제기 및 결과 설명 절차
  • 유료 AI 도구·장비 이용 격차를 줄이기 위한 동일한 참가 환경 제공 여부
  • 채용 패스트트랙 대상자와 실제 입사자의 수, 입사 뒤 직무 배치와 성과
  • 참가자가 만든 결과물과 아이디어의 권리·비밀정보 보호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