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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어야 했던 학교, 이제 이웃이 함께 청소합니다
학교 설립을 호소하며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었던 서진학교. 지난해 폭우 뒤에는 주민 30명이 찾아와 청소를 도왔고, 올봄에는 학생과 주민이 함께 동네를 걸으며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이웃이 된 시간과 여명학교에 남은 과제를 살펴봅니다.
폭우가 내린 지난해 8월, 서울 강서구 가양동 서진학교 주차장이 물에 잠기고 흙탕물로 뒤덮였습니다. 소식을 듣고 동네 주민 30명이 학교로 달려왔습니다. 가양2동 주민센터 직원 15명도 함께 빗자루를 들었습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 시간 만에 주차장이 다시 깨끗해졌습니다.
올봄에는 주민들과 서진학교 학생 20여 명이 짝을 이뤄 학교 주변에서 공원까지 걸었습니다. 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함께 줍는 플로깅이었습니다. 특별한 행사가 아니어도 같은 길을 걷고 동네를 돌보는 이웃이 됐다는 사실이 반갑습니다.
두 장면을 읽으며 2017년의 다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이 학교를 지어 달라고 부모들이 주민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그 학교에 이제 주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밉니다. 학교의 주소는 같아도 동네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은 달라진 것입니다.
학교 하나를 열기까지 일곱 해가 걸렸습니다
서진학교는 발달장애 학생을 위한 공립 특수학교입니다. 서울시교육청이 2013년부터 설립을 추진했지만, 일부 주민은 집값 하락 등을 걱정하며 반대했습니다. 학교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교실이 부족한 현실 속에서 오랫동안 먼 길을 다녀야 했습니다.
2017년 주민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학교 설립을 호소하는 모습이 알려졌습니다. 교육받을 권리를 이야기하기 위해 부모가 무릎까지 꿇어야 했다는 사실이 사회에 큰 질문을 남겼습니다. 서진학교는 2020년 3월 문을 열었습니다.
건물을 지었다고 문제가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이 학교 밖에서도 사람을 만나고 안전하게 걸으며 동네의 한 사람으로 환영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서진학교를 둘러싼 소식이 각별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학교가 먼저 문을 열고, 이웃이 응답했습니다
원보도에 따르면 학교는 행사 때마다 주민을 초대했고, 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나가 주민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학교에 집값과 안전 문제를 연결하던 이웃도 실제로 함께 지내며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주민센터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이는 보도에 등장한 관계자의 설명이지 모든 주민을 조사한 결과는 아닙니다.
아이들을 만나기도 전에 학교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정하면 편견을 고칠 기회도 사라집니다. 반대로 학교 행사에서 인사하고 길에서 마주치며, 비가 올 때는 같은 주차장을 치우는 사이에 '그 학교'가 '우리 동네 학교'가 됩니다. 올봄 학생과 주민이 짝을 지어 쓰레기를 주운 일도 그런 만남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한때 '혐오 시설'로 불렸던 학교 건물은 2021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도 받았습니다. 학교의 가치는 건축상 하나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네가 밀어내려던 공간이 학생과 주민의 삶을 잇는 장소가 되었다는 변화는 눈여겨볼 만합니다.
여명학교 앞에서 같은 질문을 다시 만납니다
조선일보 기사는 서진학교의 변화를 전하며 같은 강서구의 여명학교 문제를 함께 짚었습니다. 북한에서 온 청소년을 가르치는 여명학교는 옛 염강초등학교 부지에 새 교사를 지으려 합니다. 이 계획에도 일부 주민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장애학생을 위한 특수학교와 북한이탈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는 학생과 운영 조건이 다릅니다. 서진학교의 경험을 여명학교에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습니다.
원보도에 따르면 여명학교 건물은 약 1만1,000㎡의 옛 학교 부지 중 약 1,200㎡에 들어설 계획입니다. 나머지 부지는 유아교육진흥원의 체험·놀이 시설로 조성하고, 새 학교 옥상의 풋살장과 정원은 학생이 없는 주말에 주민에게 개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계획 단계의 약속인 만큼 교육청과 학교가 부지 사용, 공사, 통학과 안전, 시설 개방 방식을 주민과 학생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여명학교의 교사 건립과 교육권은 공공기관이 책임져야 할 과제입니다. 주민의 자발적인 호의가 교육청의 의무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동시에 학교가 계획을 설명하고 이웃이 학생을 직접 만날 기회를 열어 두면, 막연한 두려움을 실제의 사람과 일상에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시민은 이웃의 일을 자기 일처럼 돌봅니다
시민이라는 말은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사람에게만 붙지 않습니다. 공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의 판단으로 움직이는 사람, 다른 사람의 권리가 자신의 동네에서도 지켜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시민입니다. 학교가 침수됐을 때 빗자루를 들고 달려간 주민은 누군가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길을 걸으며 쓰레기를 주운 이웃도 거창한 구호를 내걸지 않았습니다.
서진학교의 변화는 반대했던 모든 사람이 마음을 바꾸었다는 증명이 아닙니다. 주민의 협력만으로 특수교육의 부족이나 안전한 통학의 과제가 해결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공적 책임 위에 자발적인 만남과 돌봄이 쌓일 때 학교와 동네가 서로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명학교 앞에서도 먼저 아이들을 한 사람의 이웃으로 보았으면 합니다. 필요한 질문은 행정에 묻고, 계획의 빈틈은 고치되, 아직 만나지 않은 학생을 편견으로 밀어내지 않는 일입니다. 비가 그친 학교로 걸어 들어간 서진학교의 이웃들이 시민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습니다.
시민이 지켜볼 점
- 서진학교 학생이 학교 안팎에서 안전하게 배우고 이웃과 만날 기회가 지속되는지
- 여명학교 교사 건립과 유아교육진흥원 계획을 교육청이 학생·주민에게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의견을 듣는지
- 예정된 주민 시설 개방과 통학·안전 대책이 실제 운영 계획으로 이어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