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브리핑 · 권력감시·국제비교
이재명의 에르도안화, 정치가 국가를 잡아먹는다
튀르키에의 실패한 쿠데타 이후 권력 집중과 한국의 사법부·수사체계 개편을 함께 살펴봅니다. 씨앗은 견제기관의 독립성이 약해지고 집권세력의 재량이 커지는 경향을 ‘이재명의 에르도안화’로 비판하며, 그 비용이 시민의 자유와 생계에 돌아오는 경로를 설명합니다.
대법관을 늘립니다. 검찰청을 없애고 수사체계를 바꿉니다. 대법원장에게는 탄핵을 요구합니다. 정부와 여권은 이 모든 일을 개혁이라고 설명합니다.
국민은 개혁이라는 말을 들으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재판은 빨라지고, 억울한 수사는 줄어들고, 권력자의 잘못도 더 엄정하게 다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혁이라면 실제로 그런 결과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개혁이 진행될수록 대통령과 집권세력을 견제할 기관의 힘이 약해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국가의 권한은 커지는데 시민이 국가의 잘못을 바로잡기는 더 어려워진다면, 그것을 개혁의 성과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지금 한국에서 살펴야 할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법부 개편과 수사권 재편을 따로 보면 복잡한 제도 논쟁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함께 놓고 보면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입니다. 이 변화가 끝난 뒤,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잘못을 누가 막을 수 있습니까.
튀르키에의 에르도안 집권 과정은 이 질문을 먼저 겪은 사례입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이재명의 에르도안화’는 권력을 견제하는 기관은 약해지고 집권세력이 행사할 수 있는 힘은 커지는 경향을 뜻합니다. 그 끝에는 시민의 자유와 경제의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1. 쿠데타를 막은 뒤, 견제까지 무너뜨린 튀르키에
에르도안은 선거로 집권한 정치인입니다. 그러나 선거에서 이겼다는 사실이 권력의 남용을 막아주지는 않았습니다. 선거로 얻은 권한을 어디까지 행사하고, 누구의 견제를 받아들일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2016년 7월 튀르키에에서는 군부 일부가 에르도안 정부를 무너뜨리려다 실패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정부와 군 내부의 오랜 권력투쟁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영국 하원 외교위원회가 검토한 증언에도 반정부 성향의 군인, 세속주의 세력,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던 인사 등 여러 집단과 동기가 등장합니다. 군 전체가 한뜻으로 움직인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1]
이후 에르도안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쿠데타 가담자를 찾아내고 책임을 묻는다는 명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치는 군 내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판사와 검사, 경찰과 공무원, 대학과 언론, 기업에까지 해임과 체포, 폐쇄 등의 조치가 확대됐습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쿠데타 이후 판사와 검사의 약 5분의 1이 해임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쿠데타에 대한 대응이 국가와 사회 전반을 재편하는 과정으로 커진 것입니다. [2]
이듬해에는 대통령의 권한을 확대하는 개헌이 이어졌습니다. 유럽평의회 베네치아위원회는 의회와 사법부의 견제가 약해지고 권위주의 체제로 퇴행할 위험을 경고했습니다. [3]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쿠데타를 막는 것과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국가를 지킨다는 이유로 권력의 한계를 없애기 시작하면, 시민은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됩니다.
2. 한국의 계엄 이후에도 권력 감시는 계속됩니다
한국도 극심한 정치적 충돌을 겪었습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야당의 탄핵과 특검, 예산 삭감으로 국정이 마비됐다고 주장하며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야당의 반복적인 탄핵 추진과 입법권 행사가 적절했는지는 계속 평가할 문제입니다. [4]
헌법재판소는 계엄 선포와 국회에 대한 군경 투입 등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판단했고, 2025년 4월 4일 윤 전 대통령을 파면했습니다. 이것은 확인된 헌법적 판단입니다. [4]
그렇다고 그 이후 집권한 세력의 권력 행사에 대한 감시까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계엄을 비판했다는 사실이 모든 정책을 정당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헌정질서를 지켰다고 주장하는 세력일수록 자신을 견제하는 제도를 존중해야 합니다.
경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상대 팀이 반칙했다고 해서 다음 경기부터 심판을 자기 팀 뜻대로 구성할 권리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반칙을 바로잡는 일과 심판의 독립성을 지키는 일은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3. 대법관 숫자 뒤에는 인사권의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사법부 개편도 이런 눈으로 봐야 합니다. 대법관을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공포 2년 뒤부터 순차적으로 늘리는 방식입니다. 최근에는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국정조사 추진과 탄핵 요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증원 입법과 탄핵 요구는 진행 단계가 다른 사안입니다. [5][6]
재판이 오래 걸려 국민이 고통받는다면 해결해야 합니다. 다만 사람이 부족한 곳이 어디인지, 어떤 재판이 왜 지연되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대법관 숫자를 늘리는 일이 실제로 국민의 재판을 얼마나 빠르게 만드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동시에 대법관 자리가 늘어나면 그 자리를 채우는 인사권의 영향력도 커집니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대법관이 되는지가 앞으로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줍니다. 숫자를 늘리는 문제에는 권력의 문제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압박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을 어긴 사실이 있다면 증거와 절차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치권이 사법부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탄핵을 사용한다면, 그 영향은 대법원장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다른 판사들도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에 불편한 판단을 내렸을 때 정치적 공격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판결에 대한 부담이 달라집니다. 법률과 증거에 집중해야 할 사람이 정치권의 반응까지 계산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시민이 피해를 봅니다. 정부를 상대로 소송한 시민, 부당한 행정처분에 맞선 기업, 권력자의 잘못을 폭로한 사람이 독립적인 판단을 받을 수 있을지 불안해집니다. 사법부의 독립은 시민이 국가와 다툴 때 기댈 수 있는 보호 장치입니다.
4. 검찰청이 사라져도 국가의 수사권은 남습니다
수사체계 개편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검찰청을 없애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다고 국가의 수사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수사권을 행사하는 기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개편된 체제에서는 공소청이 기소를 담당하고, 경찰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수사를 담당합니다. 경찰과 중수청은 서로 다른 기관이지만 모두 행정안전부 소속입니다. 누가 수사를 시작하고, 누구를 수사하며, 어떤 사건을 끝낼지에 관한 권한이 어떻게 통제되는지가 중요합니다. [7][8]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정부 고위 인사의 비리를 신고했는데 수사기관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디에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까. 반대로 정부를 비판한 뒤 무리한 수사를 받는다면 누가 그 수사를 바로잡아줄 수 있습니까.
기관을 여러 개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 답이 되지는 않습니다. 서로 다른 간판을 달고 있어도 같은 정치적 압력에 흔들린다면 실질적인 견제는 어렵습니다. 권력 수사를 끝까지 밀고 갈 수 있는 독립성이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공수처도 대통령 등에 대한 수사권을 중수청으로 넘기려는 정치권 구상에 반대했습니다. 수사 대상자의 지휘 계통에 있는 기관에 수사를 맡기는 것은 견제 구조의 퇴보라는 취지였습니다. 이 권한 이전 구상은 이미 시행된 제도와 구분해야 합니다. [9]
경찰국가화를 경계한다는 말은 이런 문제를 가리킵니다. 경찰이 많아지는지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시민을 조사하고 강제할 권한이 커질 때, 그 권한의 잘못된 사용을 막을 힘도 충분히 존재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은 수사를 두려워하고, 권력과 가까운 사람은 수사를 걱정하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법 앞의 평등은 무너집니다. 공소청의 보완수사 요구 같은 장치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독립성이 함께 중요한 이유입니다. [10]
5. 권력의 오류는 시민의 장바구니로 돌아옵니다
에르도안의 사례에서는 이런 권력 집중이 경제의 문제로도 이어졌습니다. 중앙은행은 물가와 금융 상황을 보고 금리를 결정해야 합니다. 물가가 지나치게 오르면 돈이 너무 빠르게 풀리지 않도록 조절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에르도안은 금리정책에 개입했고 중앙은행 총재를 반복적으로 교체했습니다. OECD에 따르면 튀르키에 중앙은행은 2021년부터 2023년 사이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에서도 정책금리를 총 10.5%포인트 내렸습니다. 물가상승률은 2022년 10월 약 85%까지 치솟았습니다. [11][12][13]
물가상승률 85%가 생활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보면 됩니다. 평균적으로 1년 전 10만 원이던 물건과 서비스의 묶음이 18만5천 원이 되는 수준입니다. 이것은 이해를 돕는 원화 환산 예시이며 모든 개별 물건의 가격이 똑같이 올랐다는 뜻은 아닙니다. 월급과 연금이 그만큼 따라오지 못하면 같은 일을 하고도 생활은 더 어려워집니다.
저축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장에 적힌 돈은 그대로 있어도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줄어듭니다. 시민이 오래 일해 모은 재산의 실질 가치가 깎이는 것입니다.
정책을 결정한 권력자가 그 손실을 대신 부담하지는 않습니다. 장을 보는 가정, 재료를 사야 하는 자영업자, 월급과 연금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부담합니다. 잘못된 정책을 고치지 못한 비용이 시민의 생활로 넘어갑니다.
6. 지원금을 받은 다음 달의 삶도 봐야 합니다
재정 포퓰리즘도 이런 정치와 맞물립니다. 정부가 당장의 혜택을 늘리면 국민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혜택을 오래 유지할 돈이 어디에서 나오는지까지 설명해야 책임 있는 정책입니다.
에르도안 정부는 2023년 선거를 앞두고 일부 노동자의 연금 수급 연령 요건을 없앴습니다. IMF는 이 조치의 연간 환산 비용을 국내총생산의 약 1%로 평가했습니다. 혜택을 받는 사람은 늘었지만 재정이 감당할 의무도 함께 늘었습니다. [14]
이재명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에는 총 13조9천억 원이 편성됐습니다. 그 돈이 지급될 때의 효과뿐 아니라 지급이 끝난 뒤의 결과도 살펴야 합니다. 소비가 얼마나 더 늘었는지, 자영업자의 매출 개선이 얼마나 지속됐는지,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15]
정치인은 돈을 지급한 일을 자신의 성과로 설명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국민에게 더 중요한 것은 다음 달에도, 내년에도 자기 소득으로 생활할 수 있느냐입니다. 좋은 일자리가 생기고, 가게가 버틸 수 있고, 기업이 투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가 지원을 제공하는 능력과 시민이 스스로 살아갈 능력은 함께 봐야 합니다. 지원에 대한 평가가 지급 실적에서 끝나면, 경제의 기초를 튼튼하게 만드는 일은 뒤로 밀릴 수 있습니다. 정책의 성공을 정치인의 인기로 대신해서는 안 됩니다.
7. 정치가 국가를 잡아먹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제 사법부 개편과 수사권 재편, 재정정책을 다시 연결해보겠습니다. 한쪽에서는 국가의 권한이 커집니다. 다른 쪽에서는 그 권한을 견제할 기관의 독립성이 흔들립니다. 여기에 정부가 제공하는 혜택이 정치적 지지의 중심이 되면, 권력 집중에 대한 비판은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개혁을 비판하면 기득권을 지키는 사람으로 몰리고, 지출의 효과를 물으면 민생을 외면하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정치가 위험한 이유입니다. 시민은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방법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예산의 낭비를 따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자유가 좁아지면 경제의 활력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기업은 새로운 기술과 상품보다 정부가 원하는 방향을 먼저 살피게 됩니다. 전문가는 사실을 말하기 전에 불이익을 걱정합니다. 시민은 잘못을 보고도 나서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정치가 국가를 잡아먹는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법원과 수사기관, 공직사회와 경제가 각자의 기준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집권세력의 이해를 먼저 계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국가가 바쁘게 움직이지만, 안에서는 잘못을 찾아내고 고치는 능력이 약해집니다.
한국의 미래가 이미 튀르키에처럼 정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재명의 에르도안화’는 지금 진행되는 변화의 방향을 보자는 경고입니다. 견제기관의 독립성이 줄고 집권세력의 재량이 커지는 흐름을 개혁이라는 말만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8. 씨앗의 기준은 시민이 국가를 바로잡을 힘입니다
씨앗이 원하는 국가는 유능하지만 제한된 국가입니다. 범죄를 제대로 수사하고, 재판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하며, 어려운 시민을 도와야 합니다. 동시에 시민의 권리를 침해했을 때는 법과 제도에 따라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판단할 기준은 어렵지 않습니다. 집권세력에 대한 수사가 끝까지 진행되는지, 정부에 불리한 판결도 존중되는지, 예산을 쓴 결과와 실패가 공개되는지를 보면 됩니다. 정부를 비판한 시민과 기업이 공정하게 대우받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개혁이 끝난 자리에 대통령의 힘만 커지고 시민이 국가를 바로잡을 힘은 줄어든다면, 우리는 그 변화를 거부해야 합니다. 에르도안화는 그렇게 권력이 커지는 매 단계에서 멈춰 세워야 할 문제입니다.
시민이 지켜볼 점
- 집권세력과 고위 공직자에 대한 수사가 외압 없이 끝까지 진행되는가.
- 사법부 인사가 독립적으로 이뤄지고 정부에 불리한 판결도 존중되는가.
- 공소청의 보완수사 요구와 법원의 영장심사 등 수사 통제 장치가 실제로 작동하는가.
- 재정 지원의 추가 소비 효과·지속성·재원 부담이 공개되고 정부 비판자에게도 법이 공정하게 적용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