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씨앗브리핑 10

청문회 80%가 증인 0명—이쯤 가면 막 하자는 겁니까

청문회는 대통령의 선택을 승인하는 행사가 아니라 시민이 권력을 검증하는 절차입니다. 씨앗의 소리가 국회 공식 기록을 후보자별로 다시 대조한 결과, 2026년 6월까지 열린 총리·국무위원 후보자 청문회 24건 가운데 19건에는 증인이 없었습니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9월 15일 열립니다. 그러나 후보자의 의혹을 확인할 증인과 참고인은 한 명도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국민의힘은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 청탁 의혹 등을 확인하겠다며 증인 44명과 참고인 4명을 요구했습니다. 민주당은 요구 인원이 지나치게 많고, 관련 사건이 윤석열 정부에서 기소유예로 종결됐다는 이유로 이를 모두 거부했습니다.

야당이 44명이나 요구한 것은 과도했을 수 있습니다. 후보자의 직무 능력보다 가족과 주변 사람의 사생활을 들추거나, 정치적 망신을 주기 위한 증인 신청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44명이 많다는 것과 증인이 한 명도 필요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44명이 많으면 4명으로 줄이면 됩니다. 4명도 많다면 의혹의 핵심 관계자 한두 명이라도 부르면 됩니다. 요구 인원이 많다는 이유로 증인을 모두 막아버렸다면 협상이 결렬된 것이 아니라 검증이 사라진 것입니다.

수사가 끝났다는 설명도 청문회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수사는 형사처벌이 가능한지를 판단하는 절차입니다. 인사청문회는 법무행정을 맡길 만한 사람인지, 공직자로서의 판단과 처신이 적절했는지를 살피는 절차입니다. 범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해서 공직자로서의 모든 의혹이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증인이 없으면 후보자의 해명이 사실인지 다른 관계자에게 물을 수 없습니다. 후보자의 말만 듣고 끝나는 청문회라면 교차검증이 아니라 일방적인 소명회입니다.

2. 과거의 예외가 지금은 관행이 됐습니다

김승원 후보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실제 개최된 국무총리·국무위원 후보자 인사청문회 24건을 국회 공식 영상과 실시계획 의결 기록으로 다시 대조했습니다. 그중 19건이 증인 0명이었습니다. 79.2%, 반올림하면 80%입니다.

증인 없는 장관 청문회가 이재명 정부에서 처음 생긴 것은 아닙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추미애·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 등의 청문회가 증인 없이 열렸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여야가 증인 채택에 합의하지 못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현 정부가 증인 없는 청문회를 처음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 정부에서도 있었던 잘못이라는 말로 지금 벌어지는 일을 가릴 수도 없습니다.

과거에는 예외였던 일이 지금은 압도적인 비율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는 2000년 총리 인사청문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증인과 참고인이 한 명도 없이 진행됐습니다. 2026년 한성숙 총리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야당이 요구한 증인·참고인 11명이 모두 채택되지 않아 같은 일이 반복됐습니다.

한성숙 후보자 청문회 당시 민주당은 일부 증인은 수용할 수 있었지만 국민의힘이 신청 명단 전체 수용을 고수해 합의가 무산됐다고 반박했습니다. 여야의 책임 공방과 별개로, 최종적으로 증인과 참고인이 한 명도 채택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한 번이라면 협상 실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 번이라면 우연인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체의 약 80%가 됐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예외가 관행이 됐고, 관행은 이제 원칙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3. 야당일 때 필요했던 증인이 왜 여당이 되자 불필요해졌습니까

민주당 소속 서영교 법제사법위원장은 김승원 후보자 청문회와 관련해 ‘증인 없이 가는 게 보통’이라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과거 기록은 다릅니다.

2019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는 11명의 증인이 채택됐습니다. 다만 실제 출석은 1명이었습니다. 2022년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4명의 증인이 채택됐고,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도 증인 채택을 요구했습니다.

서영교 의원 역시 2022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증인 신문은 공직 후보자의 직무수행 능력과 도덕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데 필수적인 절차라고 강조했습니다. 채택된 증인들이 출석하지 않자 불출석에는 법적 책임이 따른다는 점도 고지했습니다.

야당일 때는 법적 책임까지 거론할 만큼 증인의 출석이 중요했습니다. 여당이 되자 증인 없는 청문회가 보통이 됐습니다.

청문회의 원칙이 바뀐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검증할 자리에서 지켜야 할 자리로 옮겨갔을 뿐입니다.

국민의힘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역대 여당은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를 방어했고, 야당은 과도한 증인 신청과 신상털기를 반복했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격과 방어의 자리만 바뀌었습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잘못이 오늘의 잘못을 정상으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야당 시절 청문회의 중요성을 외쳤던 정당이라면 집권한 뒤 그 원칙을 더 엄격하게 지켜야 합니다. 과거 야당도 그랬다는 말은 해명이 아니라 책임 회피입니다.

4. 청문회가 무너져도 대통령은 임명할 수 있습니다

국무총리와 대법관 등 일부 공직자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장관은 국회가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아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21년 3월까지의 역대 정부를 비교한 자료를 보면, 국회가 임명에 동의하지 않거나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사례는 여러 정부에서 반복됐습니다. 이 문제는 어느 한 정권에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 결과 정치권에는 잘못된 학습효과가 쌓였습니다.

청문회 하루만 버티면 결국 임명된다는 것입니다.

보고서가 없어도 임명할 수 있는데, 후보자를 검증할 증인까지 여당이 막는다면 청문제도는 이중으로 무너집니다. 먼저 증인을 부르지 않아 의혹을 확인할 길을 막습니다. 그런 다음 국회가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아도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이렇게 되면 결론은 청문회 전에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청문회는 대통령의 선택을 검증하는 절차가 아니라 이미 내려진 결정에 도장을 찍는 행사가 됩니다.

법적으로 임명할 수 있다는 말이 정치적으로 정당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통령에게 인사권이 있다면 시민에게는 그 인사를 검증할 권리가 있습니다.

5. 여론을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국민 앞에 설명하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인사와 정책을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대통령에게는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인사권이 있고, 정부는 때로 여론과 다른 결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거에서 이겼다는 사실이 국민의 질문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얻었다는 사실도 검증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는 허가장이 아닙니다.

국민의 뜻을 존중하라는 말은 여론을 무조건 따르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시민이 판단할 자료를 공개하고, 핵심 증인을 불러 의혹을 확인하고, 반대 여론에도 임명해야 한다면 그 이유를 설명하라는 것입니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인 9월 13일 자진 사퇴했습니다. 이는 여론이 지금도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현 정부가 국민 여론을 언제나 전혀 듣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대통령과 다수당이 마음만 먹으면 여론을 듣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후보자에게는 국민 눈높이를 들어 사퇴를 요구하고, 다른 후보자에게는 핵심 증인까지 막아가며 방어한다면 그 차이를 설명해야 합니다.

설명 없는 선택은 인사권의 행사가 아니라 권력의 일방통행이 됩니다.

6. 증인을 막는 것은 시민의 검증권을 막는 것입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시민 참여와 거버넌스를 자주 말합니다. 정책 추진에 시민사회의 협력이 필요할 때는 시민을 국정의 동반자라고 부릅니다.

거버넌스는 정부가 필요할 때 시민의 협조를 구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시민이 정부를 통제하고 권력의 결정을 검증할 수 있어야 협치입니다. 정부가 정한 방향에 시민을 불러 세우는 것은 참여가 아니라 동원일 수 있습니다.

시민은 정책 발표장에서 박수치는 배경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선택한 사람의 해명만 듣고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 관객도 아닙니다.

국회의 증인 채택과 자료 제출 요구는 야당 의원만의 권한이 아닙니다. 국민을 대신해 행사하는 시민의 검증권입니다. 증인을 막는 것은 야당의 공격만 막는 것이 아닙니다. 시민이 사실을 확인할 통로까지 막는 것입니다.

인사청문회의 무력화는 대법관 증원, 법관 탄핵 압박, 반복된 공직자 탄핵과도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습니다. 각각의 제도에는 명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들이 한꺼번에 약해지고 있다면 그 전체의 방향을 봐야 합니다.

청문회 약 80%가 증인 없이 진행됐다는 수치 하나만으로 이재명 정부를 완성된 독재정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향해 너무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는 경고는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과 다수당이 국회의 검증, 사법부의 견제, 언론과 시민의 비판을 불편한 장애물로 여기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권위주의적 통치의 분명한 징후입니다.

독재는 어느 날 갑자기 군복을 입고 나타나는 것만은 아닙니다. 선거로 얻은 다수를 모든 결정의 면허로 여기고, 권력을 통제하는 장치를 하나씩 형식으로 만들 때도 자랍니다.

7.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 정부에 묻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3월 9일 전국 검사들과 공개적으로 마주 앉았습니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토론은 생중계됐고, 대통령에게 불편한 질문도 국민 앞에 그대로 공개됐습니다.

한 검사가 노 대통령의 과거 청탁전화 의혹을 제기하자 노 대통령은 말했습니다.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

당시 상황과 지금의 인사청문회는 다릅니다. 그러나 불편한 질문을 피하지 않고 국민 앞에서 공개적으로 맞섰던 대통령의 모습과, 증인 한 명 없는 청문회를 반복하는 정부·여당의 모습은 너무도 선명하게 대비됩니다.

씨앗의 소리는 야당이 요구한 모든 증인을 채택하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후보자의 가족을 불러 망신을 주거나 의혹만으로 후보자를 범죄자처럼 취급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핵심 의혹을 확인할 증인 한두 명조차 없는 청문회를 정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청문회는 대통령의 선택에 도장을 찍는 통과의례가 아닙니다.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하고 시민이 권력을 검증하는 민주주의의 안전장치입니다.

야당일 때 요구했던 증인은 왜 여당이 되자 불필요해졌습니까.

후보자가 떳떳하다면 핵심 관계자의 증언을 왜 막습니까.

국민의 반대에도 임명해야 한다면 그 이유를 왜 설명하지 않습니까.

시민 거버넌스를 말하면서 시민이 판단할 자료와 증언은 왜 차단합니까.

청문회 24건 가운데 19건이 증인 0명입니다.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 정부에 되묻습니다.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겁니까?

시민이 지켜볼 점

  • 9월 15일 김승원 후보자 청문회가 실제로 증인·참고인 없이 진행되는지
  • 후보자가 신약 임상시험 승인 청탁 의혹과 자녀 위장전입 의혹 등에 어떤 자료와 답변을 내놓는지
  • 법제사법위원회가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는지
  • 9월 15~16일 다른 장관 후보자 청문회까지 포함한 전체 건수와 증인 0명 청문회 비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 여야가 핵심 증인과 정치공세성 증인을 구분하는 합의 기준을 마련하는지
  • 자료 제출 거부와 증인 불출석에 실질적인 책임을 묻도록 인사청문회법을 보완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