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드 시민브리핑 14
활동가를 돕는 일, 왜 국회의원 이름이 필요했나
공익활동가의 의료비와 건강검진을 지원해 달라는 제안서가 일부 국회의원실을 거쳐 대기업에 전달됐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활동가의 열악한 처우는 실제 문제지만, 정치권의 영향력이 후원 요청에 더해졌다면 기업의 자발적 선택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동시에 누적 지원액 전체를 기업에서 받은 돈으로 보는 보도 역시 근거를 더 확인해야 합니다.
공익활동가의 의료비와 건강검진, 심리상담을 지원해 달라는 제안서가 일부 국회의원실을 거쳐 대기업에 전달됐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활동가를 돕자는 제안만 놓고 보면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시민단체 활동가 상당수가 낮은 임금과 부족한 복지 속에서 일한다는 사실은 여러 조사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안서가 국회의원실을 거쳐갔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정치권이 기업 후원의 전달자가 되어도 괜찮다는 판단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활동가의 어려움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보도에 등장한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은 활동가의 생활과 건강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조직입니다. 의료비와 건강검진, 심리상담뿐 아니라 대출과 교육, 휴식과 재충전 사업도 운영합니다.
2025년 공익활동가 지속가능지수 조사는 활동가 966명의 현실을 담았습니다. 이 연구를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공익활동가의 월평균 급여는 세전 237만원이었습니다. 2020년 조사에서도 평균 월급은 206만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작은 시민단체에서는 건강검진이나 안식휴가 같은 기본적인 복지조차 갖추기 어렵다는 지적이 반복됐습니다.
활동가는 사명감만으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병원에 가야 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며, 지치면 쉬어야 하는 생활인입니다.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이유로 가난과 과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의 하나로 이들을 지원하는 것도 잘못이 아닙니다. 동행 역시 기업과 재단의 지원을 받아 의료·재충전 사업을 운영해 왔고 홈페이지에 협력사업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활동가의 안전망은 필요합니다. 기업의 자발적인 후원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국회의원이 전달한 제안은 평범한 제안서와 다릅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동행은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거쳐 주요 대기업에 사업제안서를 전달했습니다. 제안서에는 낮은 급여와 건강 악화로 활동을 중단하는 활동가를 위해 의료비와 건강검진,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마련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고 합니다.
제안서를 받은 한 기업 관계자는 국회의원을 통한 요청을 압박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동행 관계자는 관련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현재 공개된 내용만으로 의원실이 기업을 협박하거나 후원을 강제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의원실이 전달했는지, 어떤 말을 덧붙였는지, 후원 여부를 다시 확인하거나 재촉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넘길 일도 아닙니다. 국회는 기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법을 만들고 국정감사에서 기업인을 부르며 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의원실에서 전달된 후원 요청은 일반 시민단체가 직접 보낸 제안서와 무게가 같을 수 없습니다. 의원이 ‘좋은 사업이니 검토해 달라’고 말했을 뿐이라고 해도 기업은 그 말 뒤에 있는 권한을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압박은 반드시 큰소리나 협박의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거절했을 때 혹시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게 만드는 관계 자체가 압박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의 후원은 기업이 선택해야 합니다. 국회의원의 영향력이 그 선택에 올라타는 순간 후원은 자발적인 사회공헌이 아니라 사실상의 부담금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시민단체의 현금인출기가 아닙니다. 국회의원도 시민단체의 모금 창구가 아닙니다.
좋은 목적이 불편한 과정을 덮어주지는 않습니다
시민단체는 정부와 기업의 권력을 감시합니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국가와 시장이 놓친 문제를 드러내는 것도 시민단체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그러나 시민단체 역시 조직과 예산, 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되면 감시받아야 할 권력이 됩니다. 공익을 내세운다는 이유만으로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시민단체가 정치권과 가까워지고 정치권의 힘을 빌려 기업에 돈을 요청한다면 그 단체가 기업을 비판할 때에도 의문이 따라붙게 됩니다. 후원한 기업에는 비판이 약해지고 후원을 거절한 기업에는 더 엄격해지지 않겠느냐는 의심입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독립성은 그런 의심이 생기지 않도록 지켜야 할 자산입니다.
기업 후원을 받지 말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필요한 사업을 제안하고 지원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시민단체가 직접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기업은 내부 기준과 심사 절차에 따라 결정해야 합니다. 정치인의 이름과 권한이 그 사이에 끼어들 이유는 없습니다. 좋은 목적은 좋은 과정을 요구합니다. 공익을 위한 돈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86억 원을 모두 기업에서 받은 돈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원 보도는 동행이 2013년부터 1만2천743명에게 86억7천647만원을 지원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이를 13년 동안 기업으로부터 받아낸 돈이라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지원한 돈의 총액과 기업에서 받은 후원금의 총액은 같은 숫자가 아닙니다.
동행의 사업에는 기업 후원으로 운영되는 사업뿐 아니라 조합비와 출자금에 기반한 상호부조, 대출, 의료 지원, 교육과 재충전 사업 등이 함께 포함돼 있습니다. 2021년 동행을 소개한 기사에서도 당시 지원액 37억9천만원에는 대출 지원과 의료·상담·재충전 사업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86억여 원 가운데 기업 후원금이 얼마이고 조합비와 출자금, 재단 지원금과 대출금이 얼마인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그 내역 없이 누적 지원액 전체를 기업에서 받아낸 돈으로 표현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입니다.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도 자신이 제기한 의혹만큼 정확해야 합니다. 시민단체의 권력을 감시한다는 이유로 확인되지 않은 부분까지 사실처럼 이어 붙인다면 감시의 신뢰도도 함께 무너집니다. 선한 목적도 증거를 대신할 수 없고, 강한 의혹도 증거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씨앗은 이렇게 봅니다
활동가를 돕는 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도움을 얻기 위해 정치권의 영향력을 빌렸다면 공익의 이름으로 기업의 자유를 누른 것입니다. 시민단체가 권력을 감시하려면 먼저 권력과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이 원칙은 진보와 보수, 어느 진영의 시민단체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합니다. 보수단체가 보수정당 의원을 통해 기업에 후원을 요청했더라도 씨앗의 판단은 다르지 않습니다. 공익은 정치적 친분이나 선한 목적이 아니라 투명한 절차와 자발적인 선택 위에서 신뢰를 얻습니다.
동행의 사업이 실제로 활동가에게 도움이 됐다는 사실과 의원실 경유의 적절성을 따지는 일은 충돌하지 않습니다. 좋은 성과가 있었다면 인정하고, 돈을 모은 과정에 권력이 개입했다면 그것도 따져야 합니다. 공익단체에 필요한 것은 비판으로부터의 보호가 아니라 비판을 견딜 수 있는 투명성입니다.
공익은 좋은 일을 한다는 선언만으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돈이 들어오는 과정이 투명하고 기업의 선택이 자유로우며 정치권의 손이 그 사이에서 빠져 있을 때 비로소 공익이라는 말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시민이 지켜볼 점
- 제안서를 전달한 의원실과 기업의 명칭, 의원실이 덧붙인 설명과 후속 연락 여부
- 기업에 요청한 금액과 사업 기간, 기업이 적용한 내부 사회공헌 심사 절차
- 누적 지원액 86억여 원의 기업 후원금·재단 지원금·조합비·출자금·대출금별 구성
- 동행이 의원실을 거친 경위와 기업 관계자가 압박으로 받아들인 구체적인 사정